[역경의 열매] 황영희 <9> 사이버 성매매 내몰리는 아이들 보고 충격

입력 2017-03-30 00:08
황영희 선교사(왼쪽 첫 번째)가 필리핀 세부 ‘파그라움 센터’에서 아이들과 함께 ‘손하트’를 만들며 활짝 웃고 있다.

스눅은 한마디로 미래가 없는 곳이었다. 현지인들 사이에선 우범지역으로 유명했고 살인청부업자들의 집단 거주지가 있을 정도로 위험했다. 하지만 우리를 충격에 빠뜨린 이야기는 따로 있었다.

스눅은 2012년 ‘아동 사이버 성매매’로 국제사회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빈곤한 가정의 부모들이 자녀에게 음란행위를 시킨 뒤 인터넷으로 유포해 돈을 챙긴 것이다. 한 집 건너 한 집 꼴로 해당 사건에 연루돼 있었다. 한동안 경찰들이 수시로 출동했고 그때마다 동네는 발칵 뒤집혔다. 부모들은 체포되고 아이들은 보호관찰소로 보내졌다. 이 모든 것이 우리가 스눅에 도착하기 불과 1년 전 일이었다. 외부인을 경계하던 눈빛이 그제야 이해가 갔다.

통합복지센터 설립을 위해 지역을 조사할 때 들은 이야기는 충격을 넘어 슬픔에 빠지게 했다. 겉으로 보기엔 밝은 얼굴을 한 아이들의 마음에 씻지 못할 상처들이 깊이 패여 있었다. 아이들은 그저 부모가 시키는 대로 따랐을 뿐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당장 먹고 살 수 없다고 하니까 말이다. 나중에 그것이 끔찍한 범죄이자 자신을 상처 입히는 행위인 것을 알게 됐을 때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지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지는 듯 했다. 함께 일하는 밀알복지재단 간사는 스눅 지역 조사를 마치고 오는 날이면 눈물로 며칠을 보내야 했다.

현실을 확인하고 나니 하나님이 우리를 이 지역에 ‘툭’하고 떨어뜨리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께서 바라보시며 울고 계실 땅에 보내달라고 기도했는데 정말 그 땅에 우릴 보내셨구나 싶었다. 그렇지 않아도 필베밀하우스를 이전하며 더 많은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길 바랐는데 이곳이 그런 곳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눅 지역에 깔린 마약과 범죄 등 나쁜 문화들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고 새로운 놀이 문화를 만들어줘야겠다는 사명감이 불타올랐다. 우리는 아픔으로 신음하는 스눅 지역이 희망으로 채워지길 바라며 센터의 이름을 ‘파그라움’이라 지었다. 세부어로 ‘희망’이라는 뜻이었다.

술술 풀려나갈 것 같던 파그라움 센터 건축은 이내 난관에 봉착했다. 건축비용을 꾸준히 조달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무것도 없는 맨땅에 지붕만 올린 간이 건물을 만들어놓고 2년을 보냈다. 비용이 없어 툭하면 공사가 중단되는 모습을 보면 가끔 지치고 힘들기도 했다. ‘필베밀 아이들과 하루라도 빨리 같이 살고 싶은데, 스눅 아이들에게 빨리 좋은 놀이터를 만들어 주고 싶은데….’

하나님께 어떻게 해야 하냐며 따져 물을 때도 많았다. 하지만 그때마다 다시 회개하며 떠올리는 생각은 나는 그저 주님의 심부름꾼일 뿐이라는 것이었다.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고 계획하심이 있으니 염려하지 말아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돌이켜보면 하나님께서 스눅 지역 사람들과 관계를 쌓으라고 2년여를 돌아오게 하신 것 같다.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처음엔 우리를 경계하던 주민들의 마음이 허물어지고 스눅 지역 아이들 마음속에 있는 깊은 상처들도 속속들이 알게 됐으니 말이다. 파그라움 센터의 첫 예배 참석자는 7명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하나둘씩 놀러오는 아이들이 생겼다. 이제는 주일이면 예배를 드리러 오는 인원이 200여명에 달한다. 날선 눈으로 바라보던 부모들도 이제는 ‘파그라움’이라면 믿고 아이들을 보내고 있다. 작은 희망이 또 다른 희망을 움트게 해 온 나날들이었다.

정리=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