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들 자활 꿈 담은 컵밥 팝니다”

입력 2017-03-29 00:06
탈북민들의 경제적 자립을 돕는 아리랑노점의 점장 김승근 강도사가 27일 서울 용산구 청파로의 매장에서 판매 중인 컵밥을 들어 보이고 있다. 김보연 인턴기자

막연했던 꿈이 구체화되는 것만큼 의미 있는 일이 있을까. 김승근(36) 강도사에게 서울 용산구 숙명여대 앞 ‘아리랑노점’은 그가 품은 소망이 가시화된 곳이다.

아리랑노점에서는 종이용기에 밥과 연어, 두부, 닭 가슴살 등과 소스를 담은 컵밥을 판다. 개당 3000∼4000원대로 가격이 비교적 저렴하고 신선한 재료를 사용하며 간편하게 먹을 수 있다는 장점 덕에 개업 1년여 만에 맛집으로 소문이 났다. 하루에 300∼400명의 손님이 찾는다. 지난해에는 가맹점 중 매출 1위를 기록했다.

단순히 장사가 잘되는 대학가의 식당인 듯 보이지만 속사정은 좀 특별하다. 이곳은 탈북민들에게 일을 가르치고 자립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운영되고 있다. 김 강도사는 이곳의 점장이다.

그는 27일 “월세도 비싸고 매달 투자금도 갚고 있지만 감사하게도 매달 수익금의 일부로 탈북민을 후원할 만큼 여유가 있다”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열심히 일하기 때문에 두려움은 없다”고 말했다.

김 강도사는 군에서 전역한 직후인 2007년 ‘통일을 위한 사역을 하라’는 기도의 응답을 받았다.

“돌이켜 보면 하나님은 계속 사인을 주셨던 것 같아요. 대학교 1학년 때 처음 저를 교회로 인도한 사람도 북한선교에 관심이 많은 친구였어요. 북한 땅이 보이는 최전방에서 군 생활을 한 것도 그렇고요. 매일 북녘을 보면서 하나님께 제가 나아갈 길을 보여 달라고 기도했죠.”

기도의 응답은 확실했지만 구체적이진 않았다.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몰랐다. 무작정 탈북민들을 만나보기로 했다. 광주의 하나센터를 통해 ‘탈북민 정착 도우미’ 활동을 시작했다. 탈북민 출신 목회자들도 만났다. “그 과정을 수년간 반복하며 탈북민 대부분이 영과 육의 빈곤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죠. 그들을 통일을 위한 믿음의 일꾼으로 세워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이런 결심을 한 데는 아내의 영향도 컸다. “탈북민들을 만나며 깨달았어요. 남과 북의 사람들이 서로 받아들이고 더불어 살아가는 게 진짜 통일이라는 걸요. 저부터 먼저 경험해야 한다고 생각해 탈북민 여성과 결혼을 결심했습니다. 길을 열어달라고 기도했죠.”

김 강도사는 2008년 2월 열린 제1회 통일비전캠프에서 아내 박예영(42·여) 전도사를 만났다. “아내는 탈북민 출신 사역자로 당시 캠프의 강사였어요. 강의하는 모습에 반했죠. 연애 끝에 2009년 7월 ‘남남북녀’가정을 이뤘습니다.” 박 전도사는 현재 북한선교단체 통일코리아협동조합의 이사장으로 활동 중이다.

김 강도사는 탈북민들의 ‘신앙 확립’과 ‘경제적 자립’을 돕는 것을 구체적 목표로 삼았다. 이를 위해 백석대 신학대학원에 입학, 탈북민 밀집 지역인 노원구에 ‘행복이넘치는교회’를 개척했다. 주중에는 컵밥 가게에서 일하고 주일에는 교회에서 탈북민들을 위한 목양사역을 한다. 다음 달에 목사 안수를 받는 그는 탈북민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일에도 힘쓸 계획이다.

탈북민 자립을 위한 사역의 외연도 넓힌다. “다음 달부터 소상공인 대출을 받아 준비한 푸드트럭을 운영할 계획입니다. 신앙을 가진 탈북민들이 자립을 위한 일터를 꾸리고, 그 일터를 찾은 이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독려할 겁니다. 그들이 통일 후에 북한 곳곳에 밥집을 차리고, 앞장서 복음을 전하는 날이 곧 오겠죠. 생각만으로도 행복해집니다.”

글=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 사진=김보연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