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115> 고딕 호러의 계보

입력 2017-03-28 17:38
‘크림슨 피크’ 포스터

멕시코 출신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영화 ‘크림슨 피크’(2015)를 보고 느낀 감상은 ‘아, 참으로 고딕적이구나’ 하는 것이었다. ‘고딕’이 무엇인가. 원래는 중세 유럽의 건축 스타일을 일컫는 말이지만 문예사조로는 18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융성했던 문학 장르로 일반적으로 공포와 로맨스가 결합된 작품들을 말한다. 보통 1764년 영국 작가 호러스 월폴이 출간한 ‘오트란토의 성(The Castle of Otranto)’을 효시로 꼽는데 ‘고딕 소설’이라는 명칭도 이 소설의 부제 ‘고딕 이야기(A Gothic Story)’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겨진다.

고딕 영화는 고딕 문학에서 출발한 영화의 한 장르다. 대개 젊고 순수한 여주인공이 등장하고, 성적 억압이나 질투가 중요한 갈등요인으로 작용하며, 실제나 환상의 유령이 주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아울러 더 중요한 것은 배경이 되는 장소다. 거대하고 사치스러운 혹은 호화스러웠지만 퇴락한 고딕풍 대저택이나 장원, 성이 거의 필수적이다. 항용 공포영화로 분류되나 내면적으로는 로맨스영화다.

‘크림슨 피크’는 고전 ‘제인 에어’(1943, 1996, 2011)와 이를 살짝 변형시킨 ‘레베카’(알프레드 히치콕, 1940)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거니와 고딕 영화는 연원이 오래다.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과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 그리고 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들과 함께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와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원작의 영화들도 이 범주에 들어간다. 비교적 나중 것들로는 ‘슬리피 할로우’(1999) ‘스위니 토드’(2007) 등 팀 버튼의 영화들이 있고, 실제 일어났던 ‘잭 더 리퍼 사건’을 모티브로 한 ‘프롬 헬’(2001)도 잘된 고딕 호러 영화의 하나로 꼽힌다. ‘판의 미로’(2006) 등 고딕 호러 영화로 이름을 날린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지만 요즘 할리우드 대형 영화사들의 눈에 들어 로봇영화 등 엉뚱한 데로 빠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초심을 잃지 않고 현대 고딕 호러의 명장으로 남기를.

김상온(프리랜서 영화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