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류장에 나와서야 지갑을 집에 두고 나왔다는 걸 알았는데, 마침 내가 탈 마을버스가 도착했다. 주머니에 만 원 지폐가 한 장 있어서 그걸 믿고 그냥 가보기로 했다. 그리고 아무런 의심 없이 만 원을 버스비 수거함에 넣었다. 만 원 지폐가 쏙, 안으로 들어간 걸 보고 버스기사님이 화들짝 놀랐고, 그 반응을 보는 순간 나도 아차 싶었다. 아아, 그건 시스템에 도전하는 행위였던 것이다.
버스비는 1100원, 거슬러 받아야 할 돈은 8900원이었다. 나는 운전석 근처에 앉아 승객들이 현금으로(특히 지폐로) 버스비를 내길 바랐다. 그런데 하나같이 ‘삑’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현금 승차는 이미 거리의 공중전화부스 같은 게 된 거였다. 대세는 카드 승차인 것이다. 버스가 신호대기로 멈췄을 때, 기사님이 “8900원이라…….” 하시면서 버튼을 눌렀다. 100원짜리 열 개가 떨어졌고, 그렇게 아홉 번을 반복하고 100원을 빼니 8900원이 생겼다. 나는 화장품 파우치에 동전을 담았는데, 버스 안의 동전을 싹쓸이한 기분이었다. 만원 버스가 아니었던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마을버스에서 내린 다음, 지하철을 타야 했는데 현금의 세계에 환승 할인이 있을 리 없다. 또 1회권을 구입해야 했다. 기계에 2500원을 넣어야 했는데, 손이 너무 느렸나, 동전 25개를 다 투입하기도 전에 앞에 넣은 동전들이 참을성 없이 우르르 반환되었다. 같은 과정을 반복한 후에야 1회권을 얻었는데 좀 바보가 된 느낌이었다.
카드와 단말기 사이의 접촉 한 번으로 지불이 되는 시대, 그 접촉 뒤에 얼마나 많은 과정이 생략되는지를 나는 잊었다. 그러니까 카드와 단말기 사이의 접촉이 유효하면 또 다른 접촉이 가상의 것이 되고 마는데, 요약하자면 동전의 무게 같은 것이다. 그동안 생략된 건지도 몰랐던 과정을 하나씩 더듬어서 통과하는 건 불편해도 나름의 효용이 있었다. 무게감 혹은 실감 같은 거랄까. 100원짜리 동전 89개는 묵직했다. 8900원을 머릿속으로 그릴 때보다 확실히 더.
글=윤고은(소설가), 삽화=공희정 기자
[살며 사랑하며-윤고은] 동전의 무게
입력 2017-03-28 17: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