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황영희 <8> 장애아·비장애아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세워

입력 2017-03-29 00:00
파그라움 장애인통합복지센터 건축부지를 찾아 기도하고 있는 황영희 선교사(오른쪽 두 번째)와 현지 직원들.

‘알드린 구출’을 씨앗으로 사역을 시작한 필베밀하우스는 지적 장애가 있는 마르진을 비롯해 장애 아동 4명, 아이들을 돌보는 아주머니와 선생님, 비장애인인 리아까지 합류하며 한 가정을 이루게 됐다.

얼마 후 리아처럼 빈곤한 가정의 청소년 중 학업의 욕구가 있는 아이들을 선발해 함께 지냈다. 비장애인 아이들이 필베밀하우스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장애인복지 분야의 리더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더불어 살아가는 필베밀하우스의 모습은 지역 주민들의 변화를 가져왔다. 세부는 장애인들에게 정부 차원의 지원과 돌봄을 제공하지 않는 곳이다. 빈부격차가 심하고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일상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런 곳에서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삶의 동반자로 여기는 인식의 변화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어느 날 아침, 평소와 다름없이 주일 예배를 드리러 필베밀하우스를 찾았다. 그런데 아이들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무슨 일이 있었나. 아침부터 선생님께 혼이 났나’ 생각하는데 리아가 와서 조심스런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선교사님. 어젯밤에 도둑이 들었어요.” “뭐라고.”

지난 새벽에 외부인이 필베밀하우스에 침입한 모양이었다. 옆집 사람도 내게 어젯밤 필베밀하우스에 누군가 들어가는 모습을 봤다는 이야기를 해줬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아이들의 상태부터 확인했다. 조금 놀라긴 했지만 다행히 모두 무사했다. 그제야 없어진 물건은 없는지 집안을 둘러보았다. 많지 않은 집안 살림들이 흐트러짐 없이 가지런했다. ‘분명 누군가가 들어가는 모습을 봤다고 했는데….’ 알고 보니 사라진 것은 슬리퍼 두 켤레뿐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아이들과 따로 사는 것이 늘 마음에 걸렸는데, 이런 일까지 벌어지니 같이 살 공간이 더욱 절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절실한 마음은 곧 간절한 기도로 이어졌다. ‘하나님, 아이들과 떨어져 사는 것이 늘 마음 아팠는데 이 아이들과 함께 살고 싶어요.’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는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함께 살 수 있는 집을 구해봐야겠다 싶어 이곳저곳을 알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 형편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가격의 집들뿐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살 집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 사정을 알던 한 동생이 조언을 해줬다. 임대료가 너무 비싸니 차라리 저렴한 곳의 땅을 사서 건축을 하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땅을 보러 다니던 중에 소개 받은 곳이 ‘스눅’이었다. 드넓은 대지와 탁 트인 하늘이 무척이나 아름다운 곳이었다. 가격도 다른 곳에 비해 저렴했는데 땅 주인은 당장 땅값을 감당하기 어려우면 할부를 해주겠다는 제안까지 했다.

이곳에 장애인 식구들을 위한 공동생활가정과 주단기보호시설(주간 및 단기 보호시설), 직업재활센터, 도움이 필요한 비장애인들을 위한 통합복지센터가 세워지는 그림을 그렸다. 밀알복지재단 역시 발달장애인의 교육과 자립을 위한 장애인통합복지센터를 건립해 지역 장애인의 빈곤 해소를 도모하면 좋겠다는 의견을 보내왔다. 나는 곧장 계약 체결을 추진했다.

매일 건축 부지를 찾아와 아무것도 없는 맨땅 위에서 스태프들과 기도를 했다. ‘주님이 바라는 대로, 이 땅의 장애인들에게 힘이 되는 시설이 세워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 모습이 이상해 보이던지 동네 사람들이 우리 일행을 무척 경계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던 중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됐다. “스눅에 계약했다고요? 거기 위험한 곳이에요.” 알고 보니 스눅은 하나님의 눈물이 고인 땅이었다.

정리=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