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철학자 박이문(본명 박인희·사진) 포항공대 명예교수가 26일 밤 숙환으로 별세했다. 87세.
충남 아산 출신인 고인은 서울대 불문학과를 나와 이화여대 교수에 임명됐다. 하지만 안정된 교수의 길을 버리고 유학을 떠났다. 프랑스 소르본대에서 불문학 박사학위를, 미국 남캘리포니아대(USC)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에는 서울대 포항공대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고인은 문학 철학 과학 언어학 등을 아우르는 자신만의 학문 세계를 만들어나간 학자였다. 특정 사상가의 학문에만 몰두하지 않았다. ‘이문(異汶)’이라는 필명에도 고인의 이런 성향이 묻어난다. 그는 남들과는 다른 학문을 선보이겠다는 취지에서 ‘이문(異文)’이라는 필명을 지었다가 오만하게 보일까 염려돼 ‘문(文)’에 삼수변을 넣은 ‘문(汶)’으로 바꿨다고 한다.
고인의 학문 세계를 요약하는 문구는 ‘둥지의 철학’이다. 그는 “세계관으로서의 철학이라는 건축활동, 그 동기와 건축구조는 새의 둥지 짓기와 같다”고 강조하곤 했다. 말년에는 스스로를 ‘허무주의자’라고 규정했다. 어떤 것에도 절대적인 답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2013년 출간한 대담집 제목도 ‘삶을 긍정하는 허무주의’였다.
100권 넘는 저작을 남겼으며, 시인으로도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10권 넘는 시집을 펴내기도 했다. 저서 중 일부는 영국 독일 중국 등지에서도 출간됐다. 지난해에는 고인이 60여년간 발표한 글을 추려 묶은 ‘박이문 인문학 전집’(미다스북스)이 발간돼 화제가 됐다. 2006년 인촌상을 수상했으며, 2010년에는 프랑스 정부에서 수여하는 문화훈장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아내 유영숙씨와 아들 장욱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9일, 장지는 이천호국원(02-2227-7500).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부고] ‘원로 철학자’ 박이문 포항공대 명예교수 별세
입력 2017-03-27 2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