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전 대통령 “죄없다” 버티기에… 檢, 영장 꺼낼 수밖에 없었다

입력 2017-03-27 18:17 수정 2017-03-27 21:30

박근혜 전 대통령 구속영장 청구는 결단과 시점의 문제였을 뿐 예고된 사안이다. 검찰과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지난해부터 약 5개월간 수사해 확보한 박 전 대통령의 각종 범죄 혐의 관련 증거와 진술이 차고 넘치는 상황이다. 구속 수사를 해야 한다는 여론도 많다. 다만 대선을 앞둔 민감한 시점인데다 파면되긴 했지만 전직 대통령이라는 신분을 고려해 검찰이 불구속 기소 등 다소 유연한 선택을 할 여지가 있다는 전망도 일부 있었다. 그러나 지난 23일 김수남 검찰총장이 “박 전 대통령 구속영장 청구는 오로지 법과 원칙에 따라 판단할 문제”라고 밝히면서 불구속 수사 가능성은 사실상 배제됐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는 27일 박 전 대통령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사안의 중대성, 증거인멸 우려, 형평성 등을 주요 이유로 내세웠다. 형사소송법 제70조에 따르면 피의자가 죄를 범했다고 의심할 만한 이유가 있는 경우 ‘일정한 주거가 없는 때’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는 때’ ‘도망하거나 도망할 염려가 있는 때’ 세 가지 중 하나라도 해당하면 피의자를 구속할 수 있다. 또 법원이 구속 사유를 심사할 때는 범죄의 중대성, 재범의 위험성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검찰은 우선 박 전 대통령 범죄의 성격을 “막강한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을 이용해 기업으로부터 금품을 수수케 하거나 기업 경영의 자유를 침해하는 등 권력남용적 행태를 보이고, 중요한 공무상 비밀을 누설하는 등 사안이 중대하다”고 판단했다. 형사소송법상 범죄의 중대성 항목에 해당한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은 검찰과 특검 수사를 통해 뇌물수수, 직권남용, 강요, 공무상 비밀누설 등 13개 범죄사실이 적용된 피의자로 입건된 상태다.

검찰은 또 “그동안 다수의 증거가 수집됐지만 박 전 대통령이 대부분의 범죄 혐의에 대해 부인하는 등 향후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존재한다”면서 구속 주장에 힘을 실었다.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1일 검찰에 소환돼 조사받으면서 자신이 공범으로 적시된 대부분의 혐의를 부인하거나 인정하지 않았다. 당시에도 박 전 대통령의 이 같은 진술 태도가 구속을 피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견이 많았다. 검찰이 확보한 다수의 증거를 무시하고 죄가 없다는 입장만 고집하면 검찰도 구속영장 청구라는 강수를 꺼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검찰은 “공범인 최순실(61·구속 기소)씨와 지시를 이행한 관련 공직자뿐 아니라 뇌물 공여자도 구속된 점에 비춰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덧붙였다. ‘모든 국민이 법 앞에 평등하다’는 원칙에 전직 대통령도 예외가 될 수 없다고 구속영장 청구 사유에서 명확히 밝힌 셈이다. 김 총장이 앞서 언급했던 ‘법과 원칙’ 발언도 형사소송법상 구속 사유를 엄격히 적용하고, ‘법 앞의 평등’이라는 대원칙을 충실히 따르는 것으로 구현됐다고 볼 수 있다.

박 전 대통령이 자신을 둘러싼 각종 혐의를 전면 부인해 온 만큼 30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구속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도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특히 박 전 대통령이 최순실씨와 공모해 삼성그룹으로부터 298억원대 뇌물을 받은 혐의와 최씨에게 국가 비밀 47건을 넘긴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 등이 주요 쟁점이 될 전망이다.

글=노용택 기자 nyt@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