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의 부패에 분노한 러시아 민심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당국의 봉쇄를 뚫고 러시아 전역에서 동시다발적 시위가 성사되면서 내년 대선을 앞두고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차르식 통치’에 균열이 오기 시작했다는 전망도 나온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26일(현지시간) 러시아 서쪽 끝 영토인 칼리닌그라드로부터 극동 연해주의 블라디보스토크에 이르기까지 전국 100여개 주요 도시에서 공직자 부패 척결을 촉구하는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다. 푸틴의 최대 정적이자 잠재적 대선 경쟁자인 알렉세이 나발니(40 사진)가 주도한 이번 시위에서 참가자들은 ‘푸틴 없는 러시아’와 ‘자유로운 러시아’를 연호하며 부패하고 폭압적인 정권의 퇴진을 외쳤다.
모스크바 시위현장을 취재한 워싱턴포스트는 26일 집회 참가자들이 ‘21세기 방식’의 시위를 선보였다고 전했다. 신문은 집회 도중 웃는 얼굴로 춤까지 선보인 고등학생 참가자들을 예로 들며 “시위대가 분노를 표출하는 동시에 야외 파티같은 즐거움을 선사했다”고 달라진 집회 분위기를 소개했다.
모스크바에선 도심 푸시킨 광장과 인근 트베르스카야 거리에 1만명의 시위대가 운집했다. 시위의 구심점인 나발니는 모스크바 시위에 참가하려다 당국에 체포됐는데, 구금된 이후에도 트위터를 통해 “이렇게 많은 시민들이 함께해서 행복하다. 오늘 우리의 과제는 부패와의 싸움”이라며 시위대를 독려했다. 그는 15일 구류형에 처해졌다.
러시아 경찰은 100여개 도시 중 17곳 이외엔 모두 불법 시위라고 규정하며 모스크바 집회에서 500여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러시아 인권단체 OVD-인포는 모스크바에서만 1000명 이상의 집회 참가자들이 체포된 것으로 추산했다. 같은 날 러시아 당국은 나발니가 이끄는 ‘부패 추방을 위한 펀드’ 사무실에도 들이닥쳐 17명의 직원을 연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국은 이번 시위에 대해 “내년 대선을 앞두고 지지자들을 결집하려는 야권의 도발”이라고 주장해 불붙은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미국은 26일 시위대를 체포한 러시아 당국을 비판했다. 마크 토너 미 국무부 대변인대행은 “평화 시위대와 인권 운동가들 그리고 기자들을 구금한 것은 민주주의 가치에 대한 모욕”이라고 비난했다. 또 “미국은 이 상황을 감시할 것이다. 러시아 정부에 모든 평화 시위자들을 즉각 석방할 것을 요청한다”는 성명을 내놨다. 유럽연합(EU)도 구금자 석방을 촉구했다.
이번 집회는 나발니가 이번 달 자신의 웹사이트에 푸틴의 오른팔인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가 공무원 급여를 뛰어넘는 초호화 생활을 한다고 폭로하면서 촉발됐다. 나발니는 메드베데프가 비영리 단체 조직을 통해 포도원과 맨션, 고급 요트에 심지어 오리 한 마리를 위한 집까지 10억 달러(약 1조1142억원) 넘는 재산을 부정하게 모았다고 주장했다. 나발니의 폭로는 유튜브에서만 1100만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할 정도로 폭발적인 주목을 받았지만, 메드베데프는 아무런 해명도 내놓지 않았고 당국 역시 조사 의지를 보이지 않아 비판 여론이 더욱 들끓게 했다.
구성찬 기자 ichthus@kmib.co.kr
모스크바서 연해주까지… 러 휩쓴 反푸틴 시위
입력 2017-03-27 18:36 수정 2017-03-28 0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