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원 갑질 금지법’ 딜레마

입력 2017-03-28 05:02

입주민 등이 경비원에게 업무 밖의 부당한 업무를 지시할 수 없도록 하는 일명 ‘경비원 갑질 금지법’(공동주택관리법 일부개정안)이 지난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경비원에게 사적인 심부름을 시키는 등 정해진 업무 외의 일을 지시하지 못하도록 법적 근거가 마련된 셈이다.

문제는 남아 있다. 우선 개정법에 명시된 업무 범위가 명확지 않다. 국토교통부 관계자에 따르면 정당한 업무의 범위는 계약서에 명시한 업무를 의미한다. 아파트마다 차이는 있지만 감시·단속적 근로자로 계약을 체결했다면 감시 및 방범이 계약서상 업무가 된다.

아파트 경비원이 방범만 하게 되면 오히려 대체하기 쉬운 직업군이 될 수도 있다. 전국 아파트 입주자대표 연합회는 “근로자를 업무범위에 따라 따로 채용하면 입주민의 관리비 부담이 증가하고, 경비원 등 단순 근로자 감축이 우려된다”는 의견을 국토부에 제출했다. 법 개정으로 오히려 경비원을 고용하는 아파트가 줄어드는 엉뚱한 결과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처벌규정이 없어 강제성도 떨어진다. 개정안을 발의한 더불어민주당 윤관석 의원실과 국토교통부는 해당 개정법이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계약서에 없는 업무를 시킨다고 정부가 단속해 처벌하는 불이익을 주는 조치는 고려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국토부 관계자는 “인격 모독을 방지하자는 취지”라며 “적발·처벌한다기보다는 서서히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경비원이 직접 “계약서에 없는 부당한 지시”라고 문제를 제기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명백하게 부당한 갑질을 당했다고 하더라도 자기 일자리를 걸고 말하는 것은 힘들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경비원의 고유 업무를 정하되 부가 업무에 대해서도 적정한 인센티브를 지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병식 동국대 법학과 교수는 “제설작업, 분리수거, 낙엽 처리 등을 절대 못하게 만든다기보다 기본업무와 부가업무를 명확히 정하고 부가업무를 맡으면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도 논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입주민에게 갑질을 당했을 때 시정을 요구하는 방식도 개선해야 한다. 이 소장은 “경비원이 당사자에게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면 실패는 불 보듯 뻔하다”며 “노동조합 등 법적으로 인정되는 기구를 통해 위법사항을 해소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글=임주언 기자 eon@kmib.co.kr, 일러스트=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