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남 검찰총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한 지난 21일 이후 영장 청구가 결정된 27일까지 전직 검찰총장 등 검찰 원로들로부터 다양한 의견을 구했다. 검찰 특별수사본부 수사팀은 물론 대검찰청 참모들의 의견도 두루 종합했다. 고심 끝의 결론은 1년 3개월 전 자신에게 임명장을 준 인사권자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였다. 과거 구속된 전직 대통령들이 있었지만, 자신이 임명한 총장에 의해 구속영장이 청구되진 않았다.
김 총장이 판단에 가장 중요하게 참고한 부분은 수사팀의 의견이었다. 그는 필요범위 내에서 수사팀으로부터 증거와 법리 관계에 대해 여러 차례 보고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전직 대통령 수사라는 현안을 두고 공식석상에서 회의를 열기보다는 개별적으로 의견을 구한 편이었다. 그러면서 언론에는 “오로지 법과 원칙, 그리고 수사상황에 따라 판단돼야 할 문제”라고 한마디만 했다.
총장의 발언에 ‘오로지’라는 말이 들어가자 법조계에서는 “영장 청구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일었다. 김 총장은 2015년 12월 2일 취임식에서 ‘법불아귀’(法不阿貴·법은 신분이 귀한 사람에게 아부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인용한 바 있다. 김 총장은 한비자에 나온 이 구절을 들며 “수사의 객관성과 공정성은 검찰의 존재 이유”라고 말했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도 강조했다. 법 집행에 성역이 없고 소위 정무적 판단을 배제한다면 어느 모로 보든 구속영장 청구가 불가피하지 않겠느냐는 해석이었다.
사안의 중대성과 증거인멸 가능성, 공범들과의 형평성으로 설명한 박 전 대통령의 구속영장 청구 사유에는 이러한 김 총장의 뜻이 반영됐다는 평가다. 자신을 총장에 임명한 이를 구속하고자 하는 선택을 쉽지 않은 것으로 평가하는 이들도 많다. 서울중앙지검과 대검찰청 주변에서는 전직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반대한다는 집회가 계속됐다. 대선주자 가운데서도 박 전 대통령의 불구속 수사가 적합하다는 의견을 제기하는 이가 있었다. 국격을 생각해야 한다는 여론도 부담이긴 했다. 김 총장은 구속영장 청구 문제를 놓고 고민하면서 주변 지인들에게 “운명이라 생각하려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法不阿貴”… ‘임명권자 영장’ 결단한 검찰총장
입력 2017-03-27 18:14 수정 2017-03-28 00: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