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를 찌르는 악취에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코를 막고 집 안을 둘러보니 캄캄하고 어두운 바닥에 덩그러니 놓인 물체가 눈에 들어왔다. ‘짐승인가, 사람인가. 죽었나, 살았나. 혹시 해치진 않을까.’ 짧은 순간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정신을 차리고 자세히 보니 어린 아이였다. 아이의 머리엔 배설물이 묻어 있었고 팔다리는 뼈에 가죽만 겨우 붙어있었다. 얼마동안이나 방치된 건지 가늠할 수조차 없었다.
아이의 이름은 알드린. 여섯 살, 뇌수막염으로 장애를 입은 상태였다. 부모는 가출했고 치매에 걸린 할머니가 소년의 유일한 가족이었다. 오랜 시간 먹지 못해 힘없이 누워있는 알드린은 마치 죽음만 기다리고 있는 듯 보였다. ‘하나님 이 아이를 어떻게 하나요.’
서둘러 배를 띄워 알드린을 병원으로 데려왔다. 하지만 병원에선 응급처치만 해준 뒤 다른 병원에 가보라며 돌려보냈다. 몇몇 다른 병원을 찾아갔지만 받아줄 수 없다는 답변만 되돌아왔다.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아 그랬던 것 같다. 더 지체하면 이 아이가 정말 죽음을 맞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병원에서 의사를 붙잡고 사정사정을 했다. 결국 알드린을 받아주겠다는 답을 얻었지만 병원에선 내게 돈이 많이 들 것이라 경고했다. 무슨 자신감이었을까. 일단 내가 모두 책임질 테니 최선을 다해달라고 의사에게 부탁했다. 그렇게 알드린은 한 고비를 넘기게 되었다. 그리고 기약 없는 병원생활을 시작했다.
병원비 약값 간병비 등 매일 어마어마한 돈이 빠져나갔다. 감당할 수 없는 비용에 나는 동생에게까지 전화를 걸어 돈을 구했다. 늘 염려하지 않고 주님만 바라본다고 했지만 매순간 염려가 찾아왔다. 주변 사람들은 큰돈을 들여가며 알드린을 보살피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 돈이면 더 많은 아이들을 살릴 수 있을 텐데. 살리더라도 더 힘든 현실을 눈앞에 둘 텐데.’
하지만 알드린을 그대로 보낼 수는 없었다. 알드린이 세상을 떠나게 되더라도 살아있는 동안은 사람답게 치료라도 받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분명 주님께서 알드린을 만나게 하신 이유가 있으실 거라고, 분명 이 아이를 향한 주님의 특별한 계획이 있으실 거라 믿었다. 내가 아는 모든 분들께 알드린을 위한 기도를 청했다. 상황을 전해들은 사람들이 하나둘 나눔의 손길을 더해줬다. 이어진 후원은 지속적인 치료의 밑거름이 됐다.
3개월 쯤 지나자 홀쭉했던 알드린의 볼이 통통해졌다. 병원에서도 퇴원을 권했다. 하지만 아직 거취 문제가 남아있었다. 아이가 다시 방치될 것이 분명했다. 힐루동안 섬으로 아이를 다시 돌려보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함께 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당시 우리가 거주하던 곳은 알드린과 함께 살 만한 환경이 되지 않았다.
다시 주님께 응답을 구했다. 갈 곳 없는 장애인들을 모아 함께하는 공동체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세부 지역에 장애인 공동생활가정이 없어 필요성을 느끼고 있던 차였다. 한국의 장애인 복지를 대표하는 밀알복지재단과 베데스다선교회가 연합해 장애인 공동생활가정인 ‘필베밀(필리핀 베데스다 밀알복지재단)하우스’를 만들었다.
하나님은 가장 낮은 자를 빛내주신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가족들에게조차 외면당했던 가장 낮은 곳에 있던 아이를 데리고 왔더니 축복의 통로가 열리게 된 것이다. 알드린을 통해 또 다른 장애인들이 영적인 축복과 육적인 축복을 누리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또 하나의 사역이 세부의 어둠을 밝혀내기 시작했다.
정리=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역경의 열매] 황영희 <7> 가족이 버린 장애소년 통해 축복의 통로 열려
입력 2017-03-28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