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nd 건강] 생활고에 중병까지… 보험도 못 들어 막막한가요? ‘재난적 의료비’에 SOS

입력 2017-03-28 05:01
경기도 고양시 일산병원 병실에서 한 환자가 간호사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 재난적 의료비 지원이 필요한 이들은 가까운 건강보험공단 지사를 방문하거나 대표전화(1577-1000)로 상담하면 된다. 고양=서영희 기자
서울 동대문구에 사는 윤모(57·여)씨는 2015년 4월 혈액암 확진 판정을 받았다. 두 자녀를 둔 그는 남편이 벌어오는 월 150만원으로 버텨왔지만 남편이 병간호를 위해 회사를 그만두며 생활이 더욱 어려워졌다.

윤씨는 혈액암 확진 이후 화학치료를 2번 받았다. 희귀질환인 역형성 대세포 림프종이 진행 중이었다. 하는 수 없이 비급여 약제를 사용했고 4개월간 치료비 4525만원이 나왔다. 민간보험을 들지 않아 비용은 고스란히 윤씨의 몫이었다.

항암제 중에는 건강보험 지원을 받을 수 없는 비급여 약제가 많다. 신약이 많고 희귀성 질환도 많기 때문이다. 중산층일지라도 높은 항암제 비용을 감당하다 보면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메디컬푸어(Medical Poor)는 대부분 암 등 중증질환에서 발생한다.

그나마 다행으로 윤씨는 과도한 의료비 지출로 경제적 부담을 안고 있는 저소득층 중증질환자 가구에 의료비를 지원하는 사업인 재난적 의료비 수혜 대상에 포함됐다.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2000만원의 지원금을 받은 윤씨는 최근 골수 이식을 받고 추가 치료를 위해 항암제를 투여할 예정이다.

가계 파탄 방지 위한 재난적 의료비

재난적 의료비는 메디컬푸어 방지를 위한 한시적 보완대책으로 비급여 의료비용 등 본인부담금에 최대 2000만원까지 지원한다. 보건복지부가 정부 추가 예산 300억원을 활용해 2013년 8월부터 시행한 것이 사업의 시초다.

2015년까지 한시적으로 운영할 예정이었으나 제도를 필요로 하는 이들이 많았다.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와 선택진료비·상급병실료 등 비급여 제도가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이상 재난적의료비는 존속할 가능성이 크다.

2014∼2015년 사업비 600억원과 지난해 사업비 550억원은 정부 복권기금과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지원금으로 절반씩 마련됐다. 올해 사업비는 525억원으로 정부와 모금회가 177억5000만원씩을 부담하고 건강보험 재정이 170억원을 투입한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10년 넘게 환자 인권운동을 해오면서 가장 피부로 느낄 수 있었던 사업이 재난적 의료비”라며 “550억원을 투자해 의료비 보장률을 10% 이상 올린 정책은 이전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환자에게 시혜적으로 지원하는 사업이 아니라 환자의 기본권을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재난적 의료비는 성공을 거뒀다”며 “다만 노인이나 저학력층 등은 재난적 의료비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평가했다.

재난적 의료비 신청은?

경기도 하남에 사는 김모(42)씨는 16년간 만성신부전으로 장기투석을 받느라 정기적인 경제활동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아내의 경제활동으로 생활해 왔지만 출산 후 소득마저 줄어든 상태다. 신장이식과 신장암 치료에 드는 치료비를 감당하기는 더욱 힘겨웠다.

김씨는 신장암제거 수술과 신장이식 수술로 3차례 입원해 2000여만원의 치료비가 필요했다. 이후에도 이식거부반응 예방을 위해 평생 면역억제제를 복용하며 지속적인 추적 관찰을 받아야 한다.

아내가 신장을 기증해 수술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가족의 긍정적인 응원 속에 상태는 호전 중이다. 또 공단으로부터 1078만원의 재난적 의료비를 지원받을 수 있었다.

김씨처럼 환자부담금이 일정 수준 이상 발생한 환자 또는 대리인은 입원 시부터 퇴원 후 60일 이내에 재난적 의료비를 공단에 신청할 수 있다.

의료급여 수급권자와 차상위계층은 100만원, 기준중위소득 80% 이하는 200만원, 기준중위소득 80∼100%는 연간 소득 대비 30% 이상의 의료비가 발생한 경우 심의위원회에서 심사해 지원 여부가 결정된다.

의료비 100만∼500만원 이하 환자는 50%, 500만원 초과∼1000만원 이하 환자는 60%, 1000만원 초과 환자는 70%의 의료비에 대해 재난적 의료비를 지원받는다. 대상 질환은 4대 중증질환인 암, 심장질환, 뇌혈관질환, 희귀난치질환과 사망 제외 중증화상이다.

복지부 보험정책과 신혜경 사무관은 “재난적 의료비는 비급여 혹은 본인 부담이 큰 저소득계층의 의료비 부담을 정부가 지원해서 줄이자는 취지로 마련됐다”며 “의료비로 가계가 파탄 나는 경우가 없도록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반기 특별법 제정 목표

지난해 재난적 의료비를 신청한 저소득층의 의료비 보장률은 지원 전 76.2%에서 지원 후 86.8%로 10.6% 포인트 높아졌다. 의료급여 수급권자는 88.4%, 차상위계층은 87.3%로 높은 보장률을 보였다. 복지부와 공단은 재난적 의료비를 신청할 수 있는 대상이 충분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각종 의료협회, 병원 등과 협조해 홍보와 안내를 추진하고 있다. 신 사무관은 “제도 시행 5년차로 요즘은 병원에서 환자에게 재난적 의료비 사업을 소개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한시적으로 시행되던 재난적 의료비를 내년 정례화하기 위해 지원 대상과 수준, 범위와 재원 마련 방식을 검토 중이다. 하반기 특별법 제정을 목표로 입법예고할 계획이다. 신 사무관은 “4대 중증질환에 지급됐던 재난적 의료비를 고액이 드는 모든 질환으로 확대할 계획”이라며 “의료비 지원 대상도 건강보험료 납부액 하위 50% 수준까지 넓히는 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 사무관은 “민간 실손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10만명 정도를 지원 대상으로 할 때 예산은 연 1600억∼1700억원이 든다”며 “건강보험 재원과 복권기금, 건강증진기금에서 재정 충당 방안을 협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재난적 의료비 수급 대상자에 건강보험 가입자뿐 아니라 의료급여 수급자나 차상위계층도 많이 포함된다”며 “그분들의 의료비 보장을 위해서라도 건강보험 재정 외의 정부 재정이 추가로 투입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 벨기에·伊·英 의료 보장성 높은 유럽 국가들도 고액 의료비 관련 특별기금 운영


임승지 건강보험 정책연구원은 지난달 22일 발표한 ‘중증질환 재난적 의료비 지원사업 효과 평가 및 제도화 방안’ 보고서에서 2013년 우리나라 의료비 중 가계지출 비율이 35.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멕시코(45.2%)에 이어 2번째로 높다고 지적했다. OECD 평균 가계지출 비율은 19.1%다.

임 연구원은 2005년부터 꾸준히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을 폈음에도 2006년 64.5%였던 건강보험 보장률이 2014년 63.2%에 머물렀다고 강조했다. 비급여 진료비의 지속적 상승을 그 이유로 꼽았다.

선진국은 비급여 진료에서 발생하는 저소득층 환자의 의료비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시행 중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벨기에는 특별연대기금(SSF·Special Solidarity Fund)을 건강보험료와 제약회사 급여의약품 매출액의 1%, 담뱃세 등으로 확보해 1989년부터 운영 중이다. 희귀질환, 복합적이고 장기적 치료를 요구하는 질환, 혁신적인 치료기술, 어린이 만성 중증질환 등 고액의 비급여 의료비는 SSF가 지원토록 건강보험법에 규정됐다.

이탈리아는 ‘5% AIFA Fund’를 운영한다. 의약품청(AIFA)은 급여 목록에 없는 고가의 약에 ‘동정적 사용(compassionate use)’ 명목으로 제약회사 판촉비의 5%를 갹출한다. 재정 규모는 연간 약 4000만 유로(500억원)다.

영국은 암약재정(CDF·Cancer Drug Fund)을 운영한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의 공약으로 2010년 설립된 CDF는 급여에 포함되지 않는 암 관련 의약품 또는 질환이나 증상에 의료비 지원을 하고 있다. 재정은 영국 의료보험기구 예산 중 별도의 고정 예산으로 편성된다.

임 연구원은 “의료 보장성이 높은 국가에서도 고액의 의료비 부담 경감을 위해 특별기금이 운영되고 있다”며 “건강보험의 보편성과 형평성을 고려해 고소득자 기준을 엄격히 적용해서라도 전 국민이 재난적 의료비 지원 혜택을 받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글=김동우 기자 love@kmib.co.kr, 사진=서영희 기자, 그래픽=전진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