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후 2시 연세대 광복관 별관 국제회의장에 200여명이 몰렸다. 법원 내 연구모임 국제인권법연구회(연구회)가 주최한 ‘법관 독립 확보를 위한 법관인사 제도의 모색’ 세미나에 연구회 소속 법관은 물론 학계와 취재진까지 찾아왔다. 연구회가 준비한 세미나 자료집 150부는 행사 시작 전 모두 동났다. 당초 연구회 측은 법관 40여명만 참석할 것으로 예상했다고 한다. 한 참석자는 “법관들이 주최한 세미나에 이렇게 큰 관심이 쏠린 건 처음”이라고 말했다.
이번 세미나는 준비 단계부터 ‘사법개혁 저지’ 논란에 휘말렸다. 법원행정처 고위 간부가 연구회 소속 A판사를 통해 세미나를 축소하라고 지시했다는 의혹이 불거졌고, 대법원 진상조사위원회(이인복 전 대법관)가 꾸려져 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이 과정에서 직무에 배제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30년 법관 생활을 접고 퇴직하기도 했다.
이러한 내홍에는 그동안 법관 인사(人事)에 대한 불만 표출을 금기시해 온 법원 내부의 관행이 자리하고 있다. 행정처가 아닌 일선 판사들이 사법 개혁 논의를 공개적으로 거론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법원 내부에서는 “행정처가 사법 개혁 목소리를 막으려고 했다”는 주장과 “양승태 대법원장의 임기 만료가 다가오는 시점에서 한쪽 세력이 주도권 잡기를 시도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혼재하고 있다.
연구회는 법원행정처가 인사 등 사법 행정을 전담하면서 법관들이 관료제와 서열화에 매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로 일선 판사 29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사법 개혁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서울고법 김영훈(43·연수원 30기) 판사는 “응답자의 10명 중 9명은 ‘대법원장이나 법원장 등의 정책에 반대할 경우 승진·인사 평정 등에서 불이익을 당할 우려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소속 법원장의 권한을 의식한다는 응답도 91.6%에 달했다.
김 판사는 “법관 사회가 관료화돼 있다는 걸 여실히 증명한 조사 결과”라며 “개별 판사들이 인사 불이익을 두려워하는 모습이 일반화되는 건 매우 우려스럽다”고 했다. 설문에 응답한 법관은 501명으로, 전체 법관의 약 17%다.
이종수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우리는 재판의 독립성보다도 대법원 중심의 사법부 독립성이 강조돼 왔다”며 “대법원장 직속의 법원행정처가 법관 인사를 주도해 사법부는 (행정부로부터) 독립됐을지 몰라도 정작 개별 판사들은 독립적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글=양민철 이경원 기자 listen@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
‘금기’ 깬 판사들… 법원 관료화 반기
입력 2017-03-27 0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