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 가난을 노린다… 저소득층 생계비 터는 사행산업 정부는 팔짱

입력 2017-03-27 05:02



저소득층이나 실직자 등 사회취약계층은 도박의 유혹에 약하다. 한 방에 인생을 역전할 수 있다는 한탕주의에 쉽게 끌리기 때문이다.

저소득층을 끌어들이면서 사행산업의 규모는 점점 커지고 있다. 사회취약계층의 도박중독을 막을 대책은 거의 없다시피 한 상황이어서 정부 당국이 문제를 방치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도심까지 파고든 사행산업

화상경마장 등 장외발매소가 도심에 있어 저소득층의 도박을 부추긴다는 문제는 꾸준히 제기돼 왔다. 지난해 10월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가 국회 정무위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5년까지 경마 경륜 경정 등 경주류 사행업장 입장객의 72%가 장외발매소를 이용했다. 장외발매소의 76%는 도심에 있어 저소득층도 손쉽게 다가갈 수 있다. 제 의원은 “도심 한복판에 장외발매소 설치를 용인한 정부는 저소득층에게 도박을 종용한 셈”이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경마장과 내국인 카지노 이용객 중 저소득층의 도박 중독률이 높게 나타났다. 사감위의 ‘2016 사행산업 이용실태 조사’에 따르면 내국인 카지노를 찾은 무소득자의 66.3%가 도박중독에 해당하는 ‘중위험’ ‘문제성’ 상태였다. 경마 본장과 장외발매소를 이용하는 무소득자도 54.3%가 도박중독 상태였다.

가난한 이들이 더 쉽게 도박에 빠지는 이유는 ‘한 방’에 매달리기 때문이다. 소득이 없다고 밝힌 응답자 405명 중 37.9%는 ‘혹시 돈을 따지 않을까 싶어서’ 사행성 오락에 몰두한다고 답했다. 월 소득 200만원 미만 응답자 762명 중 33.7%도 같은 답변을 했다.

사행산업은 저소득층을 주요 고객으로 삼아 그 덩치를 점점 키우고 있다. 사감위 통계에 따르면 경마 경륜 경정 카지노와 복권 등 6대 사행산업 매출은 2015년 처음으로 20조원을 넘어섰다. 이 중 경마가 38%로 가장 비중이 컸다.

한국마사회에 따르면 서울 지역 경마이용객 중 월 소득 200만원 이하 계층은 2014년 24.0%였다. 2012년 2.4%, 2013년 18.7%에서 급증한 수치다.

도박중독, 범죄로 이어진다

지난해 10월 광주 북구에서 기초생활수급자 권모(39)씨가 주민센터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질러 경찰에 붙잡혔다. 권씨는 도박자금이 필요해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확인됐다. 도박중독 때문에 여동생이 대신 관리하는 수급비를 직접 받겠다고 항의하다 불을 질렀다.

지난해 5월에는 불법 스포츠 토토에 중독된 백모(20)씨가 도박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초등학생을 상대로 온라인 게임머니 사기를 벌여 6000만원 상당을 가로챈 일도 있었다. 백씨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였다.

도박중독이 각종 범죄로 이어진다는 사실은 통계로 나타난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5년 도박자금을 마련하려고 범죄를 저지른 경우는 1649건이었다. 이 중 살인이나 방화 등 강력범죄도 22건이나 됐다. 절도는 247건, 폭력은 25건 등이었다. 도박범죄자 2만9166명 중 1만8004명(61%)의 생활수준이 하류였다. 지난해에는 이보다 5% 포인트 증가한 66%가 하류로 집계됐다.

방조하거나 장려하거나

저소득층의 도박중독으로 인한 사회적 손실이 큰데도 정부 당국은 손을 놓고 있다. 사행산업이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는 인식 때문이다.

지난해 국회에서는 새만금리조트에 내국인 카지노를 만들겠다는 ‘새만금특별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야당인 국민의당 김관영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이 법안은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이다.

도박 피해 당사자 및 가족모임인 세잎클로버 정덕 대표는 “강원랜드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사람들 중 저소득층 비중이 매우 높은데 이들 중 자살처럼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많다”고 전하면서 “정부나 정치권에서 오히려 합법 도박장을 만들려고 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그는 “합법적인 도박이라 해도 하다 보면 중독되고 결국 불법 도박까지 손을 댄다”고 말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2015년 펴낸 ‘도박범죄의 사회적 비용추계 연구’에 따르면 도박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25조4532억원으로 추산됐다.

도박중독 규제책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사감위는 매출 총량제, 전자카드 등 대책을 시행하고 있다. 대부분 강제성이 없는 권고사항에 불과해 실효성이 떨어진다.

유일한 사행산업 규제기관인 사감위의 권한이나 인력이 부족하다는 한계도 있다. 사감위 인력은 20명을 조금 웃도는 수준인 데다 인허가권은 개별 부처에 있다. 사감위의 권한은 권고나 협의까지다. 도박중독을 조기에 발견하고 예방하는 상담 전문인력도 적다.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상담 전문인력은 2017년 기준 전국 81명에 그쳤다.

호주나 마카오의 규제기관은 인허가와 취소 권한까지 가지고 있다. 운영인력도 수백명에 달한다.










글=이가현 기자 hyun@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