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포커스] 희망 못찾아 도박판 가는 기초수급자

입력 2017-03-27 05:02

지난 24일 오후 1시 서울 강북구 지하철 수유역 인근 화상경마장. 평일 점심시간인데도 중장년층 남성들로 북적거렸다. 경주가 시작되고 말들이 달리자 장내가 술렁였다. “그렇지!” “아! 4번 말이?” 기대에 찬 목소리와 한탄이 한데 섞였다. 중간을 달리던 9번 말이 역전해 1등으로 들어오자 곳곳에서 욕설이 들려왔다.

이곳을 찾은 조모(72)씨는 “마약보다 경마가 더 지독하다”고 했다. 조씨는 “경마하는 사람 태반이 저소득층이지만 배당이 높으면 큰돈을 벌 수 있으니 절대 못 끊는다”고 말했다. 은퇴 후 국민연금과 자식들이 주는 용돈으로 생활한다는 조씨는 한 달에 평균 100만원을 경마에 쓴다.

화상경마장에는 실제로 남루한 옷차림을 한 이들이 많았다. 어두운 표정으로 스크린을 바라보던 정모(68)씨는 기자에게 “젊은 사람은 여기 오지 마라”고 만류하며 “한번 맛들이면 큰일 난다”고 말했다. 그는 “나도 소득으로 따지면 저소득층인데 한탕을 바라고 계속 온다”고 한숨을 쉬었다.

김모(50)씨도 화상경마장에 있는 이들을 가리키며 “다들 행색을 봐라. 돈 있는 사람들은 경마나 경륜장 안 온다”고 말했다. 그는 “하루 종일 쓰레기 모은 돈으로 몇 만원씩 하는 사람도 있다”며 “만배 배당에 걸면 만원을 넣고 1억원을 버는 거다. 그렇게 한 번씩은 터지니까 한 방을 생각하고 못 끊는다”고 덧붙였다.

포커게임 릴게임 등 사행성 오락도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본격적인 도박으로 가는 입구다. 종로구 종로3가 일대에는 갖가지 사행성 게임기를 갖춘 성인오락실이 늘고 있다. 지난 18일 이곳에서 만난 60대 남성 A씨는 “여기는 서민들 다 죽이는 곳”이라며 “돈 없는 사람들이 하루 벌어 여기서 모두 탕진한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옆에 있던 한 남성이 “아니다. 그래도 하다보면 한 번씩은 터진다”고 끼어들었다.

성인오락실 거리 인근에는 쪽방촌이 있다.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 관계자는 “그동안 잃었던 돈을 갚고 인생역전하겠다는 생각 때문인지 오히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들이 도박을 더 많이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수급 받은 다음날 도박에 돈을 모두 탕진하고는 주변에 돈을 꾸는 사람도 많다”고 덧붙였다. 2년 전에는 도박빚 때문에 야반도주한 주민도 있었다고 했다. 쪽방촌에 거주하는 사람들 중 절반이 기초생활수급자다.

이처럼 가난한 사람들이 경마 등 사행성 오락에 빠져들어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선진국처럼 저소득층의 도박을 규제하고 중독 치료에 힘을 써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가 지난해 7월 발간한 ‘2015 도박문제관리백서’에 따르면 도박중독 치료센터를 이용한 2863명 중 소득이 없다고 응답한 비율이 37.6%로 가장 많았다. 도박 중독이 강력 범죄로 이어지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정부는 이러한 부작용에 대해 모르는 척 뒷짐만 지고 있다. 정부 재정에 보탬이 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정부와 정치권은 카지노를 경제 활성화 수단으로 논의하고 있는 실정이다.










글=이가현 기자 hyun@kmib.co.kr, 삽화=전진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