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벗으로 요리사로… 유족을 지킨 그들

입력 2017-03-26 17:37 수정 2017-03-27 00:05
세월호가 26일 전남 진도군 맹골수도 해역 반잠수 선박 위에 실려 제 모습을 온전히 드러냈다. 선체의 물과 기름을 빼내는 작업을 거친 뒤 목포신항으로 옮겨지면 미수습자 수색과 사고원인 규명을 위한 조사가 시작된다. 해양수산부 제공

#장면 1. 세월호가 반잠수식 선박에 선적되는 모습을 바다 위에서 지켜본 미수습자 가족이 팽목항으로 돌아온 25일 오후 1시. 잡곡밥과 소고깃국, 겉절이와 무생채, 동태전과 호박전이 가족들 앞에 차려졌다. 배 위에서 컵라면과 김치로 끼니를 때우며 세월호 인양을 지켜본 가족들은 오랜만에 온기가 있는 밥을 입에 떠 넣었다. 가족들이 뭍으로 돌아와 맛본 첫 끼니는 ‘주방이모’ 김명봉(37)씨가 마련했다. 한 덩치 하는 김씨지만 섬세한 음식솜씨 덕에 팽목항에선 이모로 불린다.

김씨는 9개월 전부터 틈틈이 팽목항을 찾아 유가족과 추모객들에게 밥을 내왔다. 단원고 조은화양의 아버지 조남성(54)씨는 “김씨가 차린 밥을 먹으며 헛헛한 마음을 채우고 힘을 낸다”며 고마워했다.

#장면 2. 단원고 조은화양의 어머니 이금희(49)씨가 팽목항으로 돌아와 처음 부둥켜안은 사람은 ‘팽목지기’ 김성훈(41)씨였다. 나흘 동안 어업지도선 위에서 세월호 인양을 지켜보며 쌓인 피로로 그늘져 있던 이씨의 얼굴은 김씨를 보자 환해졌다.

김씨는 단원고 고(故) 진윤희양의 삼촌이자 팽목항 궂은일 담당이다. 광화문에 집회가 열릴 때면 김씨는 차로 가족들을 데리고 서울과 팽목항을 오간다. 분향소나 빨간등대길에 걸린 노란리본이 해지면 김씨가 새 리본을 단다. 3년 전 참사 소식을 듣고 귀농지(歸農地)인 전남 해남을 떠나 온 뒤 지금껏 팽목항을 지켰다. 김씨는 ‘잊혀지면 어쩌나’라는 생각에 외로움을 느낄 때 가장 힘들다고 했다.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건 “자기 일처럼 돈과 시간을 써가며 가족들을 지켜준 자원봉사자들 덕분”이라고 말했다.

3년 만에 인양되는 세월호의 모습을 마음 졸이며 지켜본 이들은 미수습자 가족만이 아니다. 팽목항 자원봉사자, 동거차도 주민도 매순간 함께 울고 웃었다. 팽목항 자원봉사자들은 미수습자 가족들에게 요리사였고 말벗이었고 버팀목이었다. 세월호가 가라앉은 맹골수도에서 가장 가까운 섬 동거차도에 사는 주민들도 고통의 시간을 함께 보냈다.

A교수는 세월호 가족들의 3년 된 말벗이다. 이금희씨는 답답할 때면 A교수를 찾는다. A교수는 가만히 귀를 기울여준다. 가족의 이야기가 끝나면 A교수는 “이제 좀 풀렸어요? 나중에 또 속상한 일 있으면 얘기해요”라고 한다. A교수는 “가족들이 겉으로는 좋아 보여도 속은 성한 데가 한 군데도 없다”고 했다.

56가구 100여명이 사는 작은 섬 동거차도도 참사 후로 모습이 달라졌다. 임옥순(54·여) 이장은 “주민 모두 가슴 아픈 일을 알리는 데 힘을 보탰다”고 했다. 주민 조중순(75)씨는 “손주 뻘 아이들이 잘못돼 안타깝다”며 “이제 배를 건져 옮기니 떠나가겠지만 우리는 잊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26일 0시쯤 물 위로 완전히 떠오른 세월호는 3년 만에 뭍을 향한 귀환 준비에 돌입했다. 선체 물을 빼는 작업과 기름 확산을 막는 방제작업이 동시에 진행됐다. 해양수산부는 17척의 배를 동원해 3중의 방제선을 쳐놨다. 미수습자 및 유류품이 유실될 가능성에 대비해 세월호를 받치고 있는 반잠수식 선박 양쪽에도 유실 방지망이 쳐 있다.

세월호는 이르면 28일 목포로 출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반잠수식 선박이 시속 8∼10㎞로 이동할 경우 10시간 정도 걸려 87㎞ 떨어진 목포신항에 닿을 것으로 예상된다.

진도=오주환 이상헌 권중혁 기자

세종=유성열 기자 joh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