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중국파인 캐리람(59) 전 홍콩 정무사장(장관 격)이 홍콩의 최고지도자인 차기 행정장관에 당선됐다. 람 당선인이 취임하면 역대 최초 여성 행정장관이 된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26일 치러진 행정장관 선거에서 람 전 사장이 선거인단(총 1200명) 과반인 601표를 훌쩍 넘긴 777표를 얻어 행정장관에 선출됐다고 보도했다. 경쟁자인 존 창(65·사진) 전 재정사장은 365표, 우궉힝(70) 전 고등법원 판사는 21표를 얻는 데 그쳤다. 람 당선인의 임기는 오는 7월 1일부터 2022년 6월 30일까지다.
람 당선인은 당선 후 “홍콩은 심각한 분열과 좌절감을 안고 있다”며 “나의 최우선 과제는 분열을 치유하고 좌절감을 극복하고, 우리 사회를 하나로 모으는 것”이라고 밝혔다.
람 당선인은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일찌감치 당선이 예상됐었다. 지난달 말 후보 지명 때 선거위원 1194명 중 절반에 가까운 579명의 추천을 받았고, 실제 선거에선 이보다 198표 더 많은 표를 획득했다.
최근 일반인 여론조사에선 람 당선인이 존 창에 크게 뒤진 것으로 나타났으나 선거인단의 투표에선 압도적으로 승리했다. 중국 정부의 지원은 노골적이었다. 앞서 장더장 중국 전인대 상무위원장은 지난 6일 홍콩 지도층 인사들을 불러 “람은 중국이 지지하는 유일한 후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정부의 지원은 람 당선인의 이력과 관련이 있다. 람 당선인은 1957년 중국 본토 출신의 홍콩 노동자 가정에서 5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책상이 없어 침대 한쪽에 쪼그려 앉아 공부해야 할 정도로 가난했지만 학창시절 늘 1등을 놓치지 않았다. 명문 홍콩대 재학시절에는 학생회 시위에 참석하는 운동권 학생이기도 했지만 졸업 후 홍콩 정부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성향이 달라졌다. 람 당선인은 이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연수 중 영국인 남편을 만나 영국 국적의 아들 둘을 뒀다.
그는 2007년 행정청의 개발국장에 발탁되면서 크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는 당시 시민단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때 홍콩의 랜드마크였지만 노후화된 에든버러 플레이스 페리 부두 철거를 강행했다. 그때 그는 ‘거친 싸움꾼’이란 별명을 얻었다.
정무사장 시절인 2014년에는 우산혁명을 주도한 대학생들과 공개토론까지 벌였지만 물러서지 않고 1000명가량을 체포하는 등 시위대를 강경 진압했다. 이후 ‘철의 여인’ ‘홍콩의 대처’라는 별칭으로 중국 수뇌부에 깊이 각인됐다.
그러나 람 당선인이 향후 정국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 주목된다. 당장 그의 당선 및 친중국화에 대한 반대 목소리와 행정장관 직선제 요구가 분출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날도 투표 장소인 홍콩컨벤션센터 앞에선 민심과 거리가 먼 ‘사기 선거’라고 주장하는 시민들이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람 당선인은 비판 여론을 의식한 듯 “나는 ‘1국 2체제’를 유지하고 우리의 핵심 가치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현지에선 람 당선인의 취임식에 중국 국가주석으로는 처음으로 시진핑이 참석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노석철 기자 schroh@kmib.co.kr
‘홍콩판 철의 여인’ 親中 캐리람 행정장관 당선
입력 2017-03-26 18:16 수정 2017-03-26 20: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