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 때마다 일희일비(一喜一悲)하고 주변에서 소외당하지 않으려고 때로는 소신도 감춰가며 요령껏 법관 생활을 했습니다…앞으로는 저와 같이 후회스러운 말만 남기면서 법원을 떠나는 법관이 한 분도 없기를 기원합니다.”
2005년 10월 유지담 전 대법관은 자기반성으로 점철된 퇴임사를 발표하며 법원 내부에 파문을 일으켰다. 유 전 대법관은 당시 “법관의 권위는 법대에서 내려가 사건 당사자들의 발을 씻겨주는 심정으로 정성을 다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라며 “그럼에도 법관의 권위는 무조건 지켜져야 하고 법관은 당연히 존경과 신뢰를 받아야 한다고 강변하기도 했다”고 법관 생활을 소회했다. 자신의 업적과 후배 법관들에 대한 당부를 남기던 퇴임사와 다르다는 평가를 받았다
12년이 흐른 지금도 법관들의 자기반성은 그치지 않고 있다. 현직 법관인 서울중앙지법 하선화 판사는 25일 국제인권법연구회(연구회)가 주최한 ‘법관 독립 확보를 위한 법관인사제도의 모색’ 세미나에서 “관료화에 순치돼 이를 내면화환 법관은 상급심 판단을 법률과 양심에 따라 의심해보기보다 순응하게 된다”며 “합의부 배석판사가 재판장의 견해에 쉽게 동일시하는 모습은 그 구체적인 예”라고 토로했다.
법관 관료화의 대표적 원인으로는 ‘법관의 꽃’이라고 불리는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제도가 꼽힌다. 고법 부장판사는 차관급 대우를 받는다. 전용차량이 지급되고 근무성적 평정 대상에서 제외된다. 법관들의 승진·인사 시스템은 전형적인 피라미드 구조다. 임용 9∼14년차에 일부 법관들이 법원행정처 심의관이나 대법원 재판연구관 등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 고위간부들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할 수 있는 보직에서 근무한다. 법관 경력 15년차에 지방법원 부장판사가 된 후에 소수의 법관이 고법 판사나 법원행정처 총괄심의관 또는 대법원 부장재판연구관이 된다. 이후 또다시 소수의 법관이 고법 부장판사로 승진하는 것이다.
고법 부장판사 승진제도는 2018년까지 점진적으로 폐지될 예정이었다. 고등법원과 지방법원에 대한 인사를 이원화해 지법 부장판사들이 고법 부장판사로 승진하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없애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2015년 9월 이후 이원화 정책이 재검토될 수 있다는 논의가 법원 내부 전산망에 게시되며 혼란은 더욱 커지고 있다. 연구회 소속인 서울고법 김영훈 판사는 “고법 부장 보임을 희망하는 법관들이 대법원장 등 인사권자를 과도하게 의식해 예속되는 문제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며 “고법 부장 승진제도 폐지를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고법 부장 승진제도가 ‘관료화’ 원인 꼽혀
입력 2017-03-26 18: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