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트럼프호(號)가 격랑에 휩싸였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1호 법안인 트럼프케어(미국보건법·AHCA)가 결국 좌초됐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유산인 오바마케어(건강보험개혁법·ACA)는 기사회생했다. 갈 길 바쁜 트럼프 행정부는 차기 추진과제로 ‘세제개혁안’을 꺼내 들었지만 이마저도 험로가 예고된다.
트럼프는 지난 24일(현지시간) 하원 표결을 불과 30분 앞두고 트럼프케어를 전격 철회했다. 트럼프는 “민주당이 지지하지 않아서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며 “민주당 낸시 펠로시 하원 원내대표와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가 패자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오바마케어가 곧 폭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트럼프케어는 오바마케어에서 건강보험 의무 가입 조항을 제외하는 한편 가구소득과 가족 수에 따라 보조금을 차등 지급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정작 트럼프케어를 멈춰 세운 것은 백악관과 공화당의 자중지란이다. 협상의 달인을 자처하는 트럼프는 공화당 내 강경파 ‘프리덤 코커스’와 온건파 ‘화요모임’의 틈바구니에서 휘청거렸다. 공화당이 하원 전체 의석(435석)의 과반인 237석을 차지하고 있는데도 법안 통과에 필요한 218석을 확보하지 못했다.
위기의 순간 리더십의 부재도 여과 없이 드러났다. 트럼프는 참모들에게 “이렇게 된 게 누구 책임이냐”고 따져 물은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가 공화당 1인자인 폴 라이언 하원의장에게 이번 사태의 책임을 돌리려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는 2011년 7월 이후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완전한 재앙’ ‘일자리 킬러(job killer)’ 등 과격한 표현을 동원해 70차례나 오바마케어를 깎아내렸다. 트럼프는 이례적으로 자신을 비판해온 매체인 뉴욕타임스(NYT)의 매기 해버먼, 워싱턴포스트(WP)의 로버트 코스타 기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철회 사실을 미리 알릴 정도로 무산된 트럼프케어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한발 물러선 트럼프는 “이제 세제개혁안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국경세 신설을 담은 세제개혁안을 조만간 공식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는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하고, 수출품에 대해 면세 혜택을 부여하는 국경세(border tax)를 도입해 1조 달러(약 1122조원)에 이르는 신규 세수를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세제개혁안도 의회 통과가 힘들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 내부에서도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이 새어나오고 있다. 일부 공화당 상원의원은 이미 반대 의사를 나타냈다.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세제개혁안이 상원에서 10명의 지지도 얻지 못할 것이라고 평가했고, 데이비드 퍼듀 상원의원은 국경세가 소비자에게 타격을 입히는 것은 물론 경제성장 자체를 저해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세제개혁안은 전 세계적인 반발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유럽연합(EU) 등은 이미 미국의 국경세 도입에 대비해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는 앞서 다국적 기업들을 상대로 “미국에 공장을 세우지 않을 거면 비싼 국경세를 내라”고 으름장을 놨다.
상·하원을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트럼프케어가 철회되면서 트럼프 행정부의 세제개혁안, 인프라 건설 프로젝트 등 다른 핵심 국정과제도 위태롭게 될 것이라고 WP는 내다봤다.
신훈 기자 zorba@kmib.co.kr
1호 법안 트럼프케어 좌초… 트럼프 연전연패
입력 2017-03-26 18:08 수정 2017-03-26 20: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