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 주도의 대우조선해양 살리기 움직임에 복병이 나타났다. 대우조선 회사채를 소유한 국민연금공단을 비롯해 우정사업본부, 사학연금공단 등 기관투자가들이 주인공이다.
이들이 다음 달 17∼18일 확정된 사채권자 집회에서 대우조선 회사채에 대한 50% 이상 출자전환(빚을 주식으로 전환)과 만기연장에 동의해야만 정부는 계획된 2조9000억원 신규 자금 지원을 결행할 수 있다. 만일 이들이 채무 재조정을 거부하면 대우조선은 ‘프리패키지드 플랜’으로 직행한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대우조선 회사채 보유액은 3900억원 규모로 파악된다. 총 1조3500억원의 회사채 가운데 28%에 해당한다. 국민연금과 연계가 높은 우정사업본부와 사학연금공단도 각각 1800억원, 1000억원의 회사채를 보유 중이다. 사채권자 집회 채무재조정안은 총 채권액의 3분의 2 이상 채권자들이 의결해야 효력을 가진다. 이들 기관투자가들이 대부분 찬성해야 정부의 대우조선 살리기 방침이 확정되는 셈이다.
문제는 ‘최순실 게이트’ 여파로 국민연금이 대놓고 정부안을 찬성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홍완선 전 기금운용본부장은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해 국민연금공단에 1000억원대 손해를 입힌 혐의(배임)로 재판까지 받고 있다. 또다시 특정 대기업을 살리기 위해 국민 노후자금을 동원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이에 국민연금 강면욱 기금운용본부장은 “찬성, 반대의 경우를 법률적으로 검토 중”이라며 “이를 토대로 다음 주 회의를 소집해 심의 예정”이란 유보적 입장을 표했다. 채권단 관계자는 “전례에 비춰 국민연금이 정부 요청을 거스르는 선택을 할 가능성은 낮다”면서도 “사채권자 집회 당일까지 최대한 설득하는 방법뿐”이라고 말했다.
대우조선 채무 재조정의 또 다른 축인 시중은행도 무담보채권의 80%를 출자전환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업계의 출자전환 추산액은 KEB하나은행 3600억원, KB국민은행 960억원, 우리은행 800억원, 신한은행 770억원, IBK기업은행 400억원 정도다. 대우조선에 대한 위험노출액(익스포저)이 많은 순서인데, 8800억원 규모로 대우조선 익스포저 1위였던 NH농협은행은 대부분이 RG(선수금환급보증)여서 이번 출자전환 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
은행권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 주식 전환에 따른 감액 손실이 있긴 하지만 신규 자금 지원 부담은 적어 안도하고 있다. 대우조선에 대한 신용도도 ‘요주의’를 유지해 대규모 충당금 적립 부담도 피하게 됐다. 산업은행은 27일부터 시중은행 여신담당자들과 구체적인 채무조정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그래픽=박동민 기자
‘순실 트라우마’ 국민연금, 대우조선 회생안 찬성표 던질까
입력 2017-03-26 18:27 수정 2017-03-26 20: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