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건너가는 조기 추경카드… 당국도 미지근

입력 2017-03-26 18:26

올해 1분기도 성장률이 0%대 중반으로 예상된다. 6분기 연속 0%대다. 저성장이 고착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짙어진다. 정치권 일각에선 경기회복을 위해 조기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대선 일정 등을 감안하면 추경 편성은 다음 정부에서나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26일 “수출과 투자는 연초에 비해 살아나고 있지만 소비는 여전히 바닥세”라면서 “다음 달 정확한 지표가 나와 봐야 알겠지만 1분기 성장률은 0%대 중반을 기록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우리 경제의 성장률은 2015년 4분기 0.7%(전 분기 대비)를 기록한 뒤로 ‘0%대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저성장이 길어지자 ‘추경 편성’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전문가 사이에선 현재 저성장 국면이 국가재정법상 추경 편성 요건인 ‘경기침체’에 해당할 수 있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국가재정이 비교적 넉넉한 상황에서 가계소비 확대를 위해 정부가 돈을 풀 필요성은 있다”고 말했다.

여당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 직전까지 ‘3월 추경’을 주장했다. 지난 3일 사실상 마지막 당정협의에서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정책은 타이밍이 중요한 만큼 1분기가 지나기 전에 추경을 편성해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부는 줄곧 1분기 경제지표를 확인한 뒤 추경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한국은행의 올해 1분기 성장률은 다음 달 말에야 나온다.

이 때문에 조기 추경 편성은 성사되기 어렵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은 조기 추경에 회의적이다.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정부의 경제 실패를 조금이라도 부각해야 하는 야당으로선 무리해서 추경을 편성할 이유가 없다.

박 전 대통령의 파면 이후 여당의 존재조차 사라져 정부 혼자 추경을 추진하는 건 쉽지 않다. 더욱이 재정 당국은 추경에 미온적이다. 기재부 예산실은 재정 조기 집행을 독려하고 있는 만큼 새 정부 출범 뒤에 추경 편성 여부를 결정해도 늦지 않다고 본다. 정부는 상반기까지 올해 총예산 289조원의 60%인 173조6000억원을 집행한다는 방침이다. 결국 다음 달 말에 1분기 성장률 지표가 나오고, 그로부터 10일쯤 뒤인 5월 9일 차기 정부가 출범한 이후에야 추경은 공론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예산실 관계자는 “대외적으로는 물론 실무적으로도 추경에 대한 준비를 전혀 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세종=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