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일 후면 결정될 한국의 새 대통령이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는 한둘이 아니다. 무엇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서둘러 만나야 한다. 북핵과 사드 갈등, 통상 마찰과 한·일 관계 등 주요 외교안보 현안을 풀기 위해 정상회담부터 추진해야 한다. 얼마 전 워싱턴의 한 국제기구 소속 경제전문가에게 “올해 한국경제에 닥칠 가장 큰 위험요인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트럼프 미국 행정부”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사드 배치와 한국 대선 때문에 트럼프 행정부가 지금 자제하고 있지만, 한국의 새 정부가 들어서면 상당한 통상압력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중국을 겨냥한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이 아직 구체적으로 나타나지 않고 있지만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것”이라며 “환율조작국 지정이든, 대미 무역흑자 감소 요구 형식이든 중국을 겨냥한 무역전쟁이 시작되면 한국도 여파를 피해가기 어려울 것”이라고 언급했다.
실제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무역대표부(USTR) 내정자는 최근 상원 인준청문회에서 한국을 멕시코와 함께 대표적인 대미무역 흑자국으로 지목했다. 한국은 이미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환율조작국 바로 아래 단계인 관찰대상국으로 지정돼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5주년 기념일(3월 15일)이 무사히 넘어갔다고 해서 결코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북핵 등 안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최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크리스토퍼 포드 대량살상무기·확산금지 담당국장은 카네기 국제평화연구소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아직 검토단계”라면서 “지금 분명한 건 해머부터 햄버거에 이르기까지 모든 옵션이 테이블 위에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해머는 선제타격을 포함한 군사적 대응을 의미하고, 햄버거는 대화를 상징한다. 극단적으로는 한반도에서 전쟁이 날 수도 있고, 아니면 정전협정 체제를 극복하기 위한 대화가 열릴 수도 있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미국이 해머를 잡을지 햄버거를 건넬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다음달 초로 예정된 미·중 정상회담이 중요한 분수령이다.
트럼프와 시진핑이 북한을 어떻게 요리할지 논의하는 과정에 권력교체기의 혼돈에 빠져 있는 한국은 별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요즘 워싱턴을 방문하는 한국의 정치인들에게 미 행정부와 의회 지도부 인사들이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은 한국 대선 전망과 유력 후보들의 성향이다. 그중 문재인 후보에 대한 관심이 압도적이다. 유력 후보인 그가 “대통령이 되면 미국보다 북한을 먼저 방문하겠다”고 한 발언 이후 미국은 문 전 대표에 대한 의구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그가 집권할 경우 사드 배치가 차질을 빚고 나아가 한·미동맹이 약해질지 모른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
만일 문 후보가 당선돼 남북관계를 개선하겠다며 북측에 대화를 제안할 경우 미국은 난감해할 것이다. 무인항공기를 한반도에 배치하고, 북한 지도부 제거 훈련을 공개적으로 할 만큼 대북 무력시위 수위를 높이고 있는 미국은 현재로선 김정은을 대화상대로 보지 않고 있다.
현실적으로 미국은 한국의 핵심 동맹이다. 한·미 관계가 틀어지면 한·일 관계가 나빠지고, 한·중 관계의 지렛대를 상실한다. 미국의 이해와 지지를 얻지 못하면 장기적으로 남북관계 개선도 한계가 있다. 게다가 수출로 먹고살아야 하는 한국 경제로서는 당장 미국과의 통상마찰을 최소화해야 한다. 문 후보가 승리하든, 다른 후보가 이기든 당선이 확정되는 대로 백악관과 통화해 트럼프 대통령과 만날 날부터 잡을 필요가 있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r
[특파원 코너-전석운] 김정은보다 트럼프가 먼저다
입력 2017-03-26 17: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