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공간은 그의 얼굴이었다. 평생 성실한 중소기업인으로 살아온 이력이 33㎡ 안에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책상 위엔 기결 미결 보류 등으로 분류된 문서 결재함, 전자계산기와 전화기, 서류철과 책상용 달력이 놓여 있었다. 수십 년은 됨직한 책상, 인조가죽 의자엔 군청색 작업복이 걸려 있었고, 그 뒤로 오래된 책장과 회사 관련 특허증서 액자가 벽에 걸려 있었다. 금고 위에 태극기와 지구본이 인상적이었다.
지난 20일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대곶북로에 위치한 ㈜애드텍 최영철(63·서울 은평제일교회 장로) 회장의 집무실을 찾았을 때 본 풍경이다. 1990년대 집기를 그대로 쓰고 있는 듯 검소함이 배어 있었다.
애드텍은 스마트폰 등에 사용되는 특수필름을 생산하는 업체다. 최 회장은 이 업계 봉급쟁이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90년대 중반 사업을 시작했다.
최 회장 공간에선 세 가지 특별한 사물이 눈에 띄었다. 낡은 성경과 나무 십자가, 성화 롤 블라인드. 그가 50여명의 직원과 함께 하는 평범한 중소기업 오너에 더해 그리스도의 사명자임을 구별할 수 있는 표식이었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와 성도를 섬기는 직분’(엡 4:11∼12)인 장로.
“직분이 계급이 아니라는 건 말씀 속에 있습니다. 저를 장로로 들어 쓰시는 하나님께서 교회와 이웃을 섬기라고 직분을 주셨습니다. 저는 교회의 장로로서도 충실해야 하지만 사회의 장로로도 섬김을 다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최 장로는 어려운 형편에 놓인 청소년을 위해 매달 600여만원을 내놓는다. 기독NGO 한국청소년행복나눔(사무총장 문용선 목사)은 그의 섬김을 바탕으로 청소년사역을 확대할 수 있었다. 문 목사가 수년 전 불우청소년을 위한 사역이 막막해지자, 김포기독실업인회 사무실에 무턱대고 들어가 도움을 요청했을 때 고개 끄덕이고 선뜻 도와주던 이가 바로 최 장로였다. 초면이었다.
“사회의 장로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던 때였습니다. 중요한 결정을 할 때 하나님이 내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보면 금방 답이 나옵니다. 하나님 말씀 잘 들으니 회사도 원활히 돌아가더군요.”
회사가 축복을 받으면서 말레이시아에도 공장을 세웠다. 주변에선 회교권이어서 사업도, 복음도 어려울 것이라 했다.
“말레이시아 공장 교회에 70여명이 모입니다. 공장과 교회 둘 다 부흥하자 중국계 사업 파트너가 ‘하나님은 힘이 엄청 쎄군요’라며 놀라더군요. 지금은 말레이시아선교센터 진흥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말레이시아 공장의 이익은 전부 그곳 선교를 위해 쓰인다.
그는 최근 김포시역사문화유산보존회를 이끌며 언더우드 선교사 김포사적 조사를 마쳤다. 올해 안에 김포시 걸포동 공원에 언더우드를 기념하는 작은 조각이 완성된다. 그 공원터는 언더우드가 19세기 말 세운 김포제일교회의 시작점이다. 기독시민모금과 최 장로 출자로 1억여원을 모았다.
그는 자신이 직분에 충실할 수 있었던 것이 믿음의 조상에서 비롯됐다고 믿는다. 증조부를 시작으로 자신까지 4대째 이어온 신앙. 조부 최기화는 1901년 언더우드 선교사에게 세례를 받았다.
“이것이 저희 부모님께서 해방 직전 결혼식 때 김포제일교회 목사님으로부터 받았던 성경 선물입니다. 이건 신식 결혼한 부모님 흑백사진이고요.”
그가 조심스럽게 내민 성경은 1906년 일본 요코하마 인쇄소에서 찍은 한글판 ‘신약전서’였다. 이 성경책은 세필로 쓴 성경학습법, 교회행사 메모 등과 함께 합본돼 있었다. “어릴 적 아버지와 함께 풀 쑤어 합본한 기억이 난다”고 했다. 우리나라 첫 성경 번역에 나섰던 이수정 판인 듯 했다. 최 장로는 이 귀한 성경을 아크릴 박스에 넣어 보관하고 있다. 공공박물관 기증을 염두에 두고 있다.
“어딘들 기도처가 아닌 곳이 있겠습니까. 하루 중 제일 많이 머물다 보니 제 삶의 제일 귀중한 고(古)성경 등을 놓게 됐습니다.”
김포=글·사진 전정희 선임기자 jhjeon@kmib.co.kr
[교회와 공간] “기도처 아닌 곳이 있을까요 사회의 장로 직분도 충실”
입력 2017-03-28 0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