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족부(장관 강은희)가 지난 1월 11∼31일까지 시행한 ‘특정성별영향분석평가 과제 발굴 공모전’에는 다양한 과제가 제안됐다.
‘양성평등사회, 여러분이 만듭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공모전에는 ‘건설현장 여성 기능공을 위한 화장실과 탈의실 설치’건이 최우수 과제로 뽑혔다. 그 외 ‘혼자 사는 여성을 위한 안심건물 선정 및 방범설비 지원’ 등 9건이 우수과제로 선정됐다. 이들 과제가 아직까지 공론화되진 못했지만, 우리사회 곳곳에 성 불평등 요소가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진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양성평등은 여성 또는 남성이라는 이유로 직·간접적인 기회, 자원, 혜택, 의사결정권, 영향력 등에 있어 차별을 경험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저출산·고령화 문제, 근본 원인은
국무총리 산하 국책 연구기관인 육아정책연구소가 지난 20일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20∼39세 미혼남녀 1073명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 42.3%가 출산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답했다. 또 출산과 양육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조건에 대해서 1, 2순위 복수응답을 합산해 가장 많이 꼽은 항목이 ‘경제적 안정(77.7%)’이었다. 이어 ▲직장과 가정 양립의 기업문화 개선(34.4%) ▲배우자와 가사·육아 분담(32.2%) ▲자녀를 안심하고 맡길 보육시설(15.4%) 등의 순이었다. 국회예산정책처 보고서 역시 “여성 근로자 가운데 10% 이상이 출산 후 1년 이내 노동시장을 이탈하는 등 출산 후 여성 근로자에 대한 부정적 영향이 상당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결국 여성 근로자들이 출산 후에도 계속 일을 하기 위해서는 일과 양육을 병행할 수 있는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수적이다.
최근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16년 양성평등 실태조사’에 따르면 출산휴가제도가 시행된다고 응답한 임금 근로자는 39.8%, 육아휴직제도가 시행된다고 응답한 비율은 34.8%에 그쳤다. 심지어 두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지 모른다고 응답한 비율도 출산휴가는 37.4%, 육아휴직은 39.4%에 달했다. 그만큼 일과 양육을 병행하는 직장문화가 우리사회에 관행으로 정착되지 못하고 있는 점을 반증하고 있다.
현재 저출산·고령화 문제는 국가 존망이 걸린 사안이라는 표현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지난 6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도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국가가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며 관계부처 장관들에게 획기적이고 과감한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실제로 우리 정부가 지난 2005년 ‘저출산·고령화사회기본법’ 제정 이래 100조원 이상의 예산을 투입하고도 국민들에게 일과 양육을 자연스러운 생애과정으로 정착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원인을 꼼꼼히 짚어봐야 할 때다. 특히 개인이 출산을 결정하는 문제는 전체 생애과정에 대한 기대와 여건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내리는 의사결정이라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우리사회 양성평등의 실태
일부 여성단체들은 지난 8일 ‘여성의 날’을 맞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조기퇴근 시위’를 벌였다. 여성의 평균 임금이 남성의 64%에 불과하기 때문에 남성 근로자의 3분의 2만 일하고 오후 3시에 조기 퇴근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리고 다음날인 9일 발표된 여성가족부의 양성평등 실태조사 결과는 그 시위의 정당성을 어느 정도 뒷받침했다. 우리사회 여성과 남성이 직면하고 있는 불평등 문제 중에 개선할 문제(1순위+2순위)로 ▲남성에 비해 낮은 여성 임금(41.8%) ▲남성의 낮은 돌봄 참여(41.4%) ▲여성에 대한 폭력(35.5%)을 꼽았다.
여성의 경제생활 분야는 남성에 비해 여전히 취약했다. 응답자 중 남성 취업자 비중은 76.3%였지만 여성 취업자 비중은 53.4%에 그쳤다. 직장 내 성차별도 여전했다. 임금 근로자로 일하는 응답자 49.3%는 직장 내 성별 직무분리가 존재한다고 응답했고, 44.3%는 여성이 주로 음료나 다과 준비를 하는 등 성 역할 분리현상이 나타난다고 답했다. 그 밖에도 ▲채용시 남성 선호(38.6%) ▲성별 임금격차(33.1%) ▲여성 승진 차별(29.6%) 등이 존재한다는 응답이 많았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6 일·가정양립 지표’에서 부부가 함께 사는 가구 중 가사를 공평하게 분담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부부는 남편의 경우 17.8%, 아내는 17.7%였다. 지난 2008년 조사 당시 8.7%(남편), 9.0%(아내)와 비교하면 어느 정도 개선됐지만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특히 맞벌이 부부의 하루 가사노동시간이 남편은 40분인데 반해 여성은 3시간 14분으로 5배 가까이 많았다.
우리사회 양성평등의 실상은 지난해 7월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발표한 우리나라의 OECD 가입 후 20년간 주요 노동지표 순위 비교에서도 잘 나타난다. 우리나라의 성별 임금 격차는 20년 전과 마찬가지로 OECD 33개국 중 꼴찌였다. 여성 고용률은 26위,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30위로 하위권을 면치 못했다.
양성평등, 의식 변화에서 출발해야
지난해 12월 행정자치부는 ‘대한민국 출산지도’를 공개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출산장려를 위해 243개 지자체의 출생아수, 합계출산율, 가임기 여성 인구수를 집계한 지도였다. 이 지도가 공개되자 온라인상에서 ‘출산의 책임을 여성에게만 지운다’ ‘여성을 애 낳는 기계로 본다’며 거센 반발이 쏟아낸 것이다.
최근 국내 일부 대학 남학생들이 단체채팅방(단톡방)을 통해 여학생을 상대로 욕설, 성희롱, 여성혐오성 대화, 성범죄를 뜻하는 발언 등을 일삼아온 사실이 잇따라 드러나 충격을 줬다. 그 중 일부 악의적인 성희롱사건의 가해 학생들은 징계를 당하기도 했다. 우리사회 여성에 대한 인식의 단면을 엿보게 하는 사례다.
우리사회의 큰 골칫거리인 각종 성범죄도 결국 잘못된 의식에서 기인한다는 게 정설이다. 남녀 사이에서 ‘권력자’와 ‘지배층’이 구분된다는 의식의 발로라는 것이다. 오래 묵은 양성 사이의 위계적 관계가 여성을 함부로 해도 된다는 왜곡된 의식과 표현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직장은 물론이고 군대, 경찰, 심지어 학교에서까지 일어나는 각종 성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양성평등 의식을 배양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송현주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교수는 “성차별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전근대적인 교육과 사회적 구조, 이로 인한 개인의 고정 인식으로 인해 힘을 가진 사람이 성을 매개로 힘을 덜 가진 자를 괴롭힌다”며 “그런 점에서 양성평등 교육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고 양성평등 교육을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병하 기자 md5945@kukinews.com
양성평등 아직 갈 길 멀다… 의식변화 선결돼야
입력 2017-03-26 19: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