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뻥축구’, 러시아行 티켓 뻥 찰라∼

입력 2017-03-24 21:32
한국 축구대표팀의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23일(한국시간) 중국 창사 허룽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A조 조별리그 6차전에서 중국에 패한 뒤 고개를 숙이고 있다. 오른쪽은 중국의 마르첼로 리피 감독이 손을 흔들며 기자회견장에 들어서는 모습. 신화뉴시스

슈틸리케호가 충격의 ‘창샤 참사’(중국에 0:1 패배)를 겪으면서 한국 축구대표팀의 9회 연속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본선 진출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이번 참사의 원인은 한국과 중국 대표팀을 이끄는 사령탑이 내놓은 전술의 차이 때문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한국의 울리 슈틸리케(63) 감독은 이번에도 상대가 뻔히 들여다보는 ‘뻥축구’를 고집했다. 반면 중국의 마르첼로 리피(69) 감독은 맞춤형 용병술과 수비 전술을 앞세워 공한증을 극복했다.

뻥축구 고집한 슈틸리케

슈틸리케 감독은 23일 중국과의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A조 조별리그 경기에서 특별한 전술을 내놓지 못했다. 경기 양상은 지난 5차례 경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평소 슈틸리케 감독이 표방하던 점유율 축구는 비효율적이라는 게 다시 한 번 증명됐다. 한국은 볼 점유율 64.3%를 기록하며 중국(35.7%)에 앞섰다. 패스 시도 역시 514회로 264회에 그쳤던 중국을 2배 가까이 앞질렀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정작 중요한 순간에 골은 나오지 않았다.

슈틸리케 감독은 수세에 몰리자 후반전 시작하자마자 어김없이 197㎝의 장신 공격수 김신욱을 집어넣었다. 후방으로부터 롱패스를 연결 받은 김신욱이 헤딩으로 공을 떨어뜨리면 2선 침투를 통해 득점 기회를 엿보는 방식을 노린 것이다.

슈틸리케호는 지난해 10월과 11월 카타르와 우즈베키스탄 등을 상대로 이런 전술을 선보이며 나름 효과를 봤다. 하지만 이제 이 패는 상대방에게 훤히 공개됐다. 중국의 리피 감독은 이미 후반에 김신욱이 투입될 줄 알고 이에 철저히 대비했다.

0-1로 패색이 짙던 후반 38분 신예 허용준을 교체투입한 것도 도마 위에 올랐다. 한골이 중요한 상황에서 A매치 경험이 없는 허용준을 내보내기 보다는 경험이 풍부한 선수가 나섰어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슈틸리케 감독이 승리에 대한 의지보다 자신이 처음 선발한 선수를 출전시킴으로써 ‘보는 눈’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증명하기에만 급급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슈틸리케 감독은 24일 귀국 후 경기도 파주 NFC(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에서 취재진과 만나 “공을 오래 점유하면서도 효율적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부족했다. 특히 공격수들이 문전에서 마무리를 잘 할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뛰어난 용병술과 역습… 명불허전 리피

리피 감독이 한국전을 승리로 이끈 후 기자회견장으로 들어서자 중국 기자들은 박수와 함께 환호를 보냈다. 한국전 승리가 중국 국민들에게 얼마나 큰 의미로 다가왔는지를 보여주는 모습이다. 단순한 조별리그 첫 승이 아니라 경기 내용면에서도 한국보다 우위를 보였다는 점에서 현재 리피 감독에 대한 중국민의 신뢰는 절대적이다.

실제 리피 감독은 변화무쌍한 용병술과 전방 압박 이후 역습을 노리는 전술로 한국을 침몰시켰다. 리피 감독은 한국이 후반전 김신욱 카드를 꺼내자 4-3-3에서 4-4-2 포메이션으로 전환해 한국 측면 공격수들의 이동경로를 막았다.

중국 매체 신화망은 “위다바오와 왕융포를 선발로 깜짝 출전시켰는데 이들이 결승골을 만들었다. 리피 감독의 전술과 지휘력이 세계 최고”라고 치켜세웠다.

중국의 수비 조직력은 전보다 짜임새를 더했다. 태극전사들의 공격 패턴을 미리 분석해 전방에서 순간적인 압박을 가했고, 공을 가로챈 뒤 역습을 펼쳤다. 후반전에는 2명의 중앙 수비수가 김신욱을 에워싸며 한국의 추격을 잠재웠다.

슈틸리케 감독은 지난해 11월 우즈베키스탄과의 조별리그 5차전 승리로 경질 위기에서 벗어나는 듯 보였다. 하지만 단 한 경기 만에 다시 불명예 퇴출 위기에 놓였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은 24일 “지금은 한국이 조 2위에 올라있고 월드컵 본선행이 좌절된 것도 아니다”며 감독 교체에 대해 말을 아꼈다. 하지만 한국이 오는 28일 홈에서 열리는 시리아전 마저 질 경우 슈틸리케 경질설은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다.

한편 이란은 24일 새벽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카타르와의 원정경기에서 1대 0으로 승리해 A조 선두를 질주했고, 2위 한국과의 승점 차를 4로 벌렸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