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봄이 되면 서울에선 오페라 대전이 펼쳐진다. 국립 오페라단은 물론이고 민간 오페라단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작품을 선보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도 이 시기에 열린다.
4∼5월 공연되는 대작 오페라의 면면을 보자. 한러오페라단 ‘라트라비아타’(4월 6∼9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국립오페라단 ‘팔리아치’&‘외투’(4월 6∼9일)와 ‘보리스 고두노프’(4월 20∼23일), 수지오페라단 ‘나비부인’(4월 28∼30일), 무악오페라단 ‘토스카’(5월 12∼14일), 솔오페라단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팔리아치’(5월 26∼28일·이상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가 손꼽힌다.
이들 작품의 특징은 ‘베리스모 오페라’이거나 그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베리스모(verismo)는 이탈리아어로 ‘사실주의’를 뜻한다. 19세기 후반 이탈리아 오페라는 허황된 낭만주의에 반대해 현실을 반영하는 사실주의 또는 자연주의 경향이 두드러졌다.
이전까지 오페라는 주로 신화와 전설, 왕실과 귀족의 이야기를 다뤘다. 하지만 베리스모 오페라는 서민들의 실제 삶을 담았다. 그래서 가난 치정 살인 등을 소재로 인간의 추악함과 잔학성을 솔직히 표현한다. 음악적으로는 기교를 부리는 아리아 대신 절규하는 듯한 레치타티보(대사를 말하듯이 노래하는 형식)가 중시된다.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1890)와 레온카발로의 ‘팔리아치’(1892)는 베리스모 오페라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다. 두 작품 모두 사랑하는 사람의 불륜을 알고 살인을 저지르는 이야기다. 시골 기사라는 뜻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는 시칠리아를 배경으로 네 남녀의 얽히고 설킨 관계가 펼쳐지며, 광대를 뜻하는 ‘팔리아치’는 유랑극단에서 단장 부부와 두 남자 사이에 핏빛 치정극이 전개된다.
성격이 비슷한 두 작품은 각각 1막과 2막으로 길이가 짧기 때문에 100년 이상 함께 공연돼 왔다. 이번에 솔오페라단이 전통대로 두 작품을 올리는 것과 달리 국립오페라단은 ‘팔리아치’와 함께 푸치니의 ‘외투’를 짝으로 삼았다.
베르디를 이어 이탈리아 오페라를 대표하는 푸치니는 베리스모 오페라 계열에 있다. ‘라보엠’(1896) ‘토스카’(1900) ‘나비부인’(1904) ‘외투’(1918) 등은 대표적이다. 다만 그의 작품은 다른 베리스모 작곡가들에 비해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것이 특징이다. 푸치니가 ‘일 트리티코’(3부작)의 하나로 선보인 ‘외투’는 부인의 외도와 남편의 살인이 핵심이다. ‘팔리아치’와 줄거리의 얼개 면에서는 유사하다.
‘토스카’는 푸치니가 작정하고 베리스모 스타일로 쓴 작품이다. 나폴레옹 시기 혁명파 화가와 그의 연인인 가수 그리고 로마 경찰 수장 사이의 사랑과 탐욕, 증오를 담았다. 일본 나가사키가 배경인 ‘나비부인’은 다른 작품들과 달리 이국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미국 해군 장교가 어린 게이샤를 현지처로 삼았다가 버리고, 게이샤가 아이를 위해 자결하는 이야기는 베리스모에 부합한다.
한편 고급 창녀를 주인공으로 한 베르디의 ‘라트라비아타’(1853)와 왕과 함께 민중을 내세운 러시아 작곡가 무소르그스키의 ‘보리스 고두노프’(1874)는 집시와 군인의 비극적 사랑을 그린 비제의 ‘카르멘’(1875)과 함께 베리스모 오페라의 기원이 된 작품으로 꼽힌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봄꽃처럼… 몰려오는 ‘베리스모 오페라’
입력 2017-03-26 17:28 수정 2017-03-26 2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