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유출 범죄수익, 피해자에 첫 반환

입력 2017-03-24 18:27 수정 2017-03-24 21:13
미국으로 빼돌려진 다단계 사기 범죄수익이 10년 만에 환수돼 피해자들에게 반환됐다. 해외유출 범죄수익이 국고로 귀속된 적은 있지만 소액이나마 피해자에게 직접 돌아간 건 처음이다. 한국 검찰과 미국 정부의 장기간 공조로 이뤄졌다.

대검찰청 국제협력단(단장 권순철 차장검사)은 수년간 미국 법무부·연방검찰·국토안보수사국(HSI)과 공조해 2007년 미국으로 유출된 범죄수익 9억8000만원을 환수했고 이번 주 피해자 691명에게 반환했다고 24일 밝혔다. 앞서 A씨는 2007년 7월부터 2008년 12월까지 외환 투자회사를 상장해 이익을 내주겠다며 1800여명에게 296억원을 편취했다. 그는 2007년 11월 19억6000만원을 ‘자금세탁’해 미국으로 송금, 배우자 명의로 캘리포니아주에 빌라를 사들여 범죄수익을 숨겼다.

검찰은 피해자 조사 과정에서 A씨가 미국에 빌라를 마련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2010년 10월 미 HSI 한국지부에 범죄수익 환수를 요청했다. 캘리포니아 중부연방검찰청은 2011년 12월 캘리포니아 중부연방법원에 부동산 민사 몰수를 청구했고, 법원은 이듬해 2월 몰수 허가를 결정했다. 2013년 3월 공매가 개시돼 96만5000달러에 낙찰, 완납됐다.

이 돈을 한국 검찰이 즉시 돌려받을 수는 없었다. 국내로 환수할 수 있는 국내법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국제협력단은 2015년 11월 미국 연방검찰에 “미국법상 몰수 면제·피해자 환부제도에 따라 반환을 요청한다”고 공식 제안했다. 일정한 요건이 충족되면 법무부 장관의 재량으로 범죄수익을 피해자에게 되돌려주는 미국법상 제도를 들어 설득한 것이다. 결국 미 법무부는 지난해 9월 몰수금을 우리나라 피해자들에게 반환하겠다고 결정했다.

대검은 15명의 검사·수사관으로 구성된 ‘미국 유출 범죄피해금 환부지원팀’을 설치, 2개월간 피해자들을 심사했다. 우편 통지, 신청서 심사를 거쳐 2000여건의 전화·방문 상담을 실시해 1800여명의 인적사항을 확인했다. 검찰의 연락을 보이스피싱으로 의심하는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10년 전의 피해를 일부라도 돌려받을 줄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기 피해를 더는 기억하기 싫다는 이들도 있었다. 최종 정리한 명단은 691명이었다.

돈은 피해 규모에 따라 배분했다. 1인당 평균 140만원이었다. 1000만원의 피해를 입은 이들에게 70만원이 쥐어지는 수준이었다. 그래도 피해자들은 “우리도 포기한 돈을 국가가 일부나마 찾아줘 감사하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