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여름. 묵상 중에 하나님께서 계속 창세기 12장 1절 말씀을 주셨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고 명령하시는 말씀이다. ‘왜 내게 이러한 말씀을 주실까. 날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뭘까’ 고민하던 중 우연히 청년 시절 섬기던 목사님께서 필리핀에 선교사로 가신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지난 10년 간 연락이 끊겼던 목사님과의 우연한 조우. 문득 창세기 말씀이 떠올랐다. ‘이게 하나님이 주시는 또 다른 계획일까.’ 아니나 다를까. 목사님께서 내게 필리핀 선교 사역을 제안하셨다.
처음엔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이미 그때 난 모든 것을 내려놓은 상태였다. 몸이 불편한 남편, 어린 두 아이가 있는 이상 내 인생에 해외선교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왜 하필 지금인가요. 지금 제 상황 잘 아시잖아요.’ 그때 하나님과 얼마나 실랑이를 했는지 모른다.
청년 시절 케냐 선교사를 꿈꿀 때 생각지도 못했던 이유로 꿈을 접게 하셨고, 중국에 선교사로 가고자 할 땐 결혼하라고 말씀하셨던 하나님이기에 더 그랬다. 그렇게 갈등하는 와중에 또 다른 통로를 통해 필리핀 장애인 선교 제안을 받게 되었다. 한번도 가본 적 없는 필리핀이 신기루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아. 하나님의 뜻이구나.’
2010년 6월 필리핀 세부에 도착했다. 처음엔 힐루동안, 빵안안 등 섬에서 장애인 사역을 했다. 그러나 발길이 닿는 곳마다 열악한 상황이 이어졌다. 식수가 없어 빗물을 받아 사용하는 사람들. 가난한 장애인들에겐 빗물조차 받아 쓸 여력도 없었다. 섬사람들은 대부분 물고기를 잡아 쌀로 바꿔서 식량을 마련했는데 몸이 불편하니 그마저도 할 수 없는 장애인들은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다.
나는 장애인들에게 쌀과 비타민을 나눠줬다. 하지만 나 또한 넉넉한 상황이 아니었기에 어려움이 컸다. 파송단체의 상황도 열악했을 뿐더러 개인적인 후원자도 거의 없었다. 역시 믿을 건 기도뿐이었다. “주님, 이 땅 장애인들의 삶이 너무 고달픕니다. 제발 이들에게 힘이 될 수 있는 동역자를 만나게 해주세요.” 매일 눈을 뜨고 감을 때까지 쉼 없는 기도가 이어졌다.
얼마 후 밀알복지재단의 정형석 대표와 연락이 닿았다. 국내에서 20여년 장애인 복지사업에 주력해 온 밀알복지재단은 해외까지 사역 범위를 넓혀나갈 계획이었다. 때마침 내가 장애인 사역을 위해 세부로 떠났다는 것을 알게 된 정 대표가 먼저 연락을 준 것이다.
밀알복지재단 관계자들은 사역지를 방문해 장애인들의 열악한 현실을 둘러봤다. 그리고는 면밀한 검토 끝에 지원을 결심했다. 간절한 기도에 또 한 번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이었다. 밀알복지재단과 협력하게 되면서 사역은 차츰 안정적 궤도에 올랐다. 비정기적으로 지원 활동을 해오다가 정기적으로 구제사역을 진행할 수 있었다.
자신들을 돕기 위해 꾸준히 찾아오는 나를 보며 주민들의 마음도 차츰 열렸다. 신뢰가 생기는 순간이었다. 경계의 벽이 허물어지자 진심은 주민들에게 빠르게 녹아들었다. 나중엔 현지인들에게도 공개를 꺼리는 빈민가에도 들어갈 수 있게 됐다.
우리는 더 많은 빈민들을 돕기 위해 힐루동안 섬의 지역조사를 시작했다. 이전에 몇 번 사역을 한 적이 있어 내가 선교사임을 알고 있는 섬 주민들은 내게 “도움이 필요한 곳”이라며 한 집을 가리켰다. 사람 사는 집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곳곳이 부서져 있었다. 나는 집의 방문을 열고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정리=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역경의 열매] 황영희 <6> “필리핀, 왜 하필 지금인가요”… 하나님과 실랑이
입력 2017-03-27 0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