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가장 괴롭히는 감정은 죄책감이다. 규칙을 어기고, 잘못을 저지르면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다. 죄책감과 우울은 항상 짝을 이뤄 찾아온다. 그렇다고 죄책감을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여러 심리학 연구 결과를 보면 죄책감을 잘 느끼는 성향을 가진 사람은 타인의 감정을 잘 인식하고, 공감 능력도 뛰어나다고 한다. 이런 사람은 책임감이 강하고 공정성을 지키려는 열망도 크다.
개인적으로는 괴롭지만, 사회적으로 보면 죄책감은 이로운 감정이다. 우리가 옳게 행동하려고 애쓰는 것도 죄책감 때문이다. 죄를 반성하고, 용서를 구하고, 앞으로 달라지겠다고 다짐하는 것은 이 감정에 따라오는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다. 사회의 도덕적 탄핵에 따라 몸을 낮춰 살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하면 괴로움은 조금이나마 줄어든다. 미안하다며 연신 머리를 조아리고 괴로워하는 사람을 보면 우리는 그를 동정하고 용서해주고 싶어진다. 죄책감은 완벽하지 않은 인간을 하나로 묶어주는 친사회적 감정이다.
상담을 하다 보면 죄책감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엉뚱한 사람을 괴롭히는 사례를 종종 본다. 남편의 폭력에 시달려온 아내가 “내가 남편에게 더 잘해 줬으면 되는데… 제 잘못이에요”라며 자신 탓을 하고, 정작 죄를 지은 남편은 “술에 취해 실수한 거다. 기억나지 않는다”며 죄책감을 피해가려 한다. 갑질하는 권력자나 사이코패스의 근본적인 원인도 그들이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는 데 있다. 약하고 힘없는 사람을 괴롭히고, 그들에게 해를 입혀 놓고도 “당해도 싸다”며 뻔뻔하게 군다.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건 미안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죄책감은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성숙한 어른의 감정이다. “내가 부족해서 당신을 충분히 돌보지 못했다”라는 마음이 우리를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게 한다.
죄책감은 자연스럽게 솟아나는 일차적 감정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라고. 송구하면 송구한 것이지 송구스럽게 ‘생각할 수’는 없다. 죄책감은 느끼는 것이지 ‘생각’으로 아는 것이 아니다. 자신에게 송구한 마음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서 알게 되었다는 건 미안함도, 죄책감도 느끼지 못했다는 뜻이다.
김병수(정신과 전문의)
[감성노트] 죄책감
입력 2017-03-24 17: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