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효진의 사모it수다] “사모님, 그 가방 명품이네요”

입력 2017-03-25 00:00

최근 만난 L사모(31)는 얼마 전 교회에서 황당한 일을 겪었다고 했다. 결혼 2년차 전도사 사모인데, 친정아버지가 생일선물로 사준 가방을 교회에 들고 갔다가 한 집사님한테 “그 가방 명품이네요”라는 말을 들었다. “아버지께 선물로 받은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집사님은 “전도사 사례비가 얼마나 된다고 사모가 사치를 부리냐”고 핀잔을 주더란다. 집사님 앞에서 얼굴을 붉힐 수도 없던 그는 집으로 돌아가 펑펑 울었다고 털어놨다. L사모는 그날 이후 교회에 그 가방을 절대 들고 가지 않는다고 했다.

K사모(44)도 지난해 비슷한 일을 겪었다. 새 옷을 입고 교회에 갔던 날 한 교인이 갑자기 옷의 목 부분을 뒤집더니 상표를 확인했다. K사모는 “무례한 행동에 화가 나서 며칠 동안 잠을 못 잤다”고 회상했다.

사모의 차림새와 표정, 화장, 말투, 걸음걸이 등은 교인들에게 관심의 대상이다.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부담감을 느끼지 않는 사모도 더러 있지만 교회 안의 사모에 대한 시선은 여전히 보수적이다.

사모가 옷을 잘 차려입고 가면 일부 성도는 화려하거나 사치스럽다고 수군대고, 옷을 못 입으면 패션 감각이 없거나 초라해 보인다고 쑥덕댄다. 또 바지를 입으면 ‘사모가 돼서 치마를 안 입는다’고 눈치를 주거나 막상 치마를 입고 가면 치마 길이를 두고 ‘짧다’ ‘길다’ 등 의견이 분분하다.

교회는 다양한 사람이 공동체를 이뤄 신앙생활을 하는 곳이다 보니 사모를 바라보는 시선과 기준에 따라 옷차림 평가는 늘 엇갈릴 수밖에 없다.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난감한 사모들은 교인들이 무심코 내뱉는 사소한 한마디에도 큰 상처를 받는다. 교인들의 시선이 주는 심한 중압감을 못 견뎌 우울증에 시달리는 사모도 있다.

사모가 조금 허름한 옷을 입고 나타나거나 때론 명품을 들고 있어도 교인들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아름답게 봐줬으면 좋겠다. 사모의 옷차림 이면에는 주일마다 ‘무엇을 입고, 어떤 구두를 신고, 어떤 가방을 들까’ 고민하는 마음도 함께 담겨 있다. 하나님 앞에서, 또 교인들이 바라볼 때 검소하지 못하고 늘 사치를 부리며 진품인 척하는 짝퉁 사모가 아니라면 한번쯤은 그녀들의 옷차림에 모른 척 눈 감아주는 게 어떨까.

지난 15일, 3년 넘게 경력이 단절됐던 P사모(35)가 몇 년 만에 재취업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더욱 감사한 것은 사모의 취업 소식을 들은 몇몇 교인이 형편이 어려운 사모를 위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첫 출근 때 입고 가라며 예쁜 정장과 구두를 선물했다는 것 아닌가. “교인들의 손길을 통해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어려운 때 교인들이 섬겨준 따뜻한 마음에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다”는 P사모의 고백을 듣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서로가 원하고 기대하는 바는 달라도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는 아름답고 귀한 존재라는 것, 또 서로 이해하고 공감하는 모습을 통해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고 기뻐하는 진정한 공동체의 모습이 아닐까.

어느덧 따뜻한 봄이 찾아왔다. 겨우내 입었던 두꺼운 옷을 정리하는 계절, 교인들의 옷차림도 한결 가벼워지는 계절이다. 사모도 사모이기 전에 패션과 액세서리에 관심도 많고 아름다워 보이고 싶은 여자다. 이번 주 우리 교회 사모의 옷차림에 따뜻한 칭찬 한마디 건네보는 것은 어떨까.











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