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떠오른 '세월'의 아픔… 아이들아, 얼마나 춥고 무서웠니

입력 2017-03-23 18:10 수정 2017-03-24 01:24
23일 새벽 4시47분, 세월호 선체가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1073일 만이다. 지난 2014년 4월 16일 수학여행 떠나던 학생들을 싣고 가던 배다. 수많은 시민들이 기도하는 마음으로 기다리던 배다. 서울 도심 광화문광장에서 매일같이 울며 소리치며 건져내라던 배다. 304명 비통한 죽음의 진실을 품고 있는 배, 미수습자 9명의 죽음을 마침내 확인시켜줄 배다. 좌현으로 누운 채 잠겨 있던 선체를 그대로 끌어올렸기 때문에 세월호의 오른쪽 측면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붉은 녹을 뒤집어쓴 채 찢기고 긁히고 부식된 흔적이 가득하다. 유가족들의 마음도 아마 그랬을 것이다. 사진은 경비행기로 상공에서 촬영했다. 진도=김지훈기자

배가 떠오른다. 딸을 삼킨 바다를 보는 어머니는 자꾸만 숨이 가빴다. 22일 오전 10시30분 단원고 조은화양의 어머니 이금희(49)씨는 전남 진도 맹골수도 해역의 어업지도선 갑판에 올라서 1.6㎞ 앞에 떠 있는 바지선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30분 전부터 시험인양이 시작됐다. 1072일을 기다린 세월호 인양의 마지막 고비였다. 바람도 강하지 않고 물결도 잔잔했지만 소용돌이치는 파도골이 더 눈에 띄었다. 같은 곳을 보는 다윤양의 아버지 허흥환(54)씨도 머릿속이 복잡했다. 급하게 오느라 딸에게 줄 선물을 팽목항에 두고 온 게 자꾸 아쉬웠다. 딸이 좋아하던 강아지 ‘깜비’도 생각났다.

단원고 2학년 1반 조은화양, 2반 허다윤양, 6반 남현철·박영인군, 교사 고창석·양승진님, 권재근님, 권혁규님, 이영숙님. 아직 돌아오지 못한 9명을 기다리는 가족은 바다 위에서 밤을 꼬박 지새웠다. 23일 오전 4시47분, 아직 검은 바다 위로 곳곳에 녹이 슬어 처참한 선체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 우리 아이가 차디찬 물 속에 그만 있어도 되겠구나.” 이씨는 한참을 목 놓아 울었다.

선체가 모습을 드러낼수록 가족들의 오열도 커졌다. 허씨는 “하루라도 빨리 올라오길 바랐던 배가 너무나 참담한 모습”이라고 했다. 이씨는 “미수습자 엄마로서 유가족이 되는 게 소원이라는 게 말이 되느냐”며 “가족을 찾아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엄마라서 절대 포기할 수 없다. 세월호 인양을 위해 기도해 달라.” 미수습자 가족들은 지난 22일 오전 9시 팽목항 빨간 등대 앞에서 울음과 같은 호소를 남기고 사고 해역으로 가는 어업지도선에 몸을 실었다.

가족들이 갑판 위에서 지켜본 지 6시간이 지나서야 세월호는 바다 아래에서 간신히 1m를 떠올랐다. 그 소식만으로도 가족들은 서로 부둥켜안았다. 이씨는 “3년을 기다렸는데 며칠을 못 참겠느냐”며 마음을 다졌다.

이날 밤 본인양이 결정됐다. 이씨는 “밤을 새워도 배가 떠오르는 걸 보겠다”며 다른 가족들을 갑판으로 데리고 갔다. 바다를 바라보며 세월호가 올라오면 내 딸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을 되뇌었다.

사고 해역에서 1.3㎞쯤 떨어진 동거차도 꼭대기에서도 유가족 10여명이 22일부터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인양을 지켜봤다. 23일에도 유가족 8명이 카메라로 인양하는 모습을 확대해 보며 날씨가 나빠지거나 돌발 상황이 생길까 걱정했다. 밤 10시 긴급브리핑에 앞서 가족들에게 소식이 전해졌다. 세월호 뒤편 왼쪽 램프(차량을 싣고 내리기 위한 선체의 문이자 발판)가 열려 인양이 늦어질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이씨는 “잘될 거다. 그렇게 믿고 기다리고 있다. 희망을 안 버리고 기다리고 있다”고 되뇌었다.

팽목항 등대길에는 미수습자들의 이름이 쓰인 노란 깃발들이 바람에 나부꼈다. 흐렸던 날씨가 포근해지면서 추모객들의 발길도 이어졌다. 광주에서 온 장화영(56·여)씨는 “세월호가 인양된다는 소식을 듣고 일부러 왔다”며 “그동안 바쁘다는 이유로 못 와서 마음이 안 좋았다”고 했다. 정라영(37·여)씨는 “이렇게 쉬운 인양을 왜 지금까지 안 했을까 싶다”고 했다.

진도=오주환 김영균 이상헌 권중혁 기자 joh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