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평재활원 장애인들 ‘더부살이 4년’ 고단한 삶 “흩어진 친구들 하루빨리 만나고 싶어요”

입력 2017-03-24 05:00
서울 은평구 구산동 은평재활원에 모여 살던 지적·지체 장애인들이 11일 다른 아파트에 마련한 임시 거처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다. 재건축을 위한 공사비가 모자라 애를 태우고 있다. 곽경근 선임기자

지적장애를 앓고 있는 이승연(가명·15)군의 하굣길은 오늘도 버겁다. 이군은 근육이 갈수록 줄어드는 근이영양증으로 2014년부터는 아예 걸을 수 없다. 그런 이군의 휠체어를 여성 사회복지사들이 들어 올린 채로 아파트 난간을 올라야 한다. 이군이 생활하던 은평재활원이 2014년 철거된 바람에 임시로 근처 아파트로 거처를 옮겼기 때문이다.

1980년 설립돼 1000여명 장애인의 거처와 치료를 제공했던 재활원은 안전기준에서 D등급을 받아 철거됐다. 다음달 착공을 시작하는 새 재활원은 내년은 돼야 완공된다. 건물을 짓는 데 필요한 16억6100만원 중 11억4300만원은 정부 보조금으로 마련했지만 남은 5억1800만원은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

재활원에는 이군처럼 지적장애나 지체장애를 앓고 있는 50명의 장애인이 있다. 35명은 부모를 찾을 수 없는 무연고자다. 46세 큰형님부터 갓 10살을 넘긴 초등학생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장애인이 옹기종기 모여 함께 살고 있다.

재활원은 주변의 아파트 1동과 빌라 4곳을 빌려 이들의 임시 거처를 마련했다. 하지만 임시 거처에서는 “쳐다본다”는 이웃의 항의로 창문이 가려져 하늘을 마음껏 바라볼 수 없다. 답답한 공간 속에서 마음껏 운동하지 못해 스트레스를 받거나 비만이 돼 건강에 어려움을 겪는 장애인이 부쩍 늘었다. 치료실이 없어 매일 받아야 하는 재활치료를 제때 받기도 어렵다.

2011년 재활원에 입소한 이군은 스스로 대소변을 보기가 어렵다. 매일 칼슘제와 위 보호제, 스테로이드를 복용해야 한다. 하지만 함께 사는 중증 장애인 형들의 손을 잡고 놀아주는가 하면 과자를 먹여주며 대화도 나눈다.

이군에게는 한 가지 꿈이 있다. 건축 중인 재활원이 하루빨리 완공돼 흩어진 형들과 예전처럼 함께 지내는 것이다. 이군은 “2014년 전에는 친구들과 함께 장난감도 만들고 팽이 돌리기도 했다”며 “빨리 새 건물이 지어져 친구들과 함께 지내고 싶다”고 말했다. 재활원 식구들은 임시 거처에서의 삶이 힘들 법하지만 오랜 시간 가족처럼 지내왔기에 함께 이겨내고 있다. 부모와 연락이 끊긴 이군은 “선생님들이 부모처럼 친절하게 대해줘 고맙다”며 “선생님들과 함께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재활원은 남은 건축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승연이의 따뜻한 집을 지어주세요’라는 주제로 바자회와 거리 행진, 미술 전시회를 열어 모금을 벌였다. 하지만 생각만큼 후원이 성사되지는 않았다.

재활원은 오는 5월 20일 서울 은평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재활원 증개축 기금 마련을 위한 사랑나눔 음악회를 열 예정이다. 서울색소폰 오케스트라가 섭외됐고 장애인 12명이 결성한 댄스팀 ‘춤추는 은평재활원’이 율동을 선보인다. 이군은 “음악회에 많은 사람이 놀러 왔으면 좋겠다”며 “걸그룹 트와이스의 지효 누나가 온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글=김동우 기자 love@kmib.co.kr, 사진=곽경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