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북한과 통일 어떻게 볼 것인가

입력 2017-03-25 00:01

독일통일이 이뤄진지 26년이 지났습니다. 독일인만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었습니다. 유럽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급격한 변화, 다시 말해 소련 해체, 동서 냉전구도 붕괴라는 세계사의 전환을 독일 국민이 기가 막히게 통일 기회로 삼은 것입니다.

서독 정부가 통일을 주도할 때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났던 특징은 세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동독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일체의 언행을 삼간 것이고, 둘째는 통일되기 20여년 전부터 민간 주도로 동독을 지원한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독일의 통일이 주변 국가들에게 위기의식을 갖게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세 가지 원칙은 여전히 분단의 벽이 높은 우리에겐 너무나 귀한 시금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간 한국교회는 통일신학을 체계 있게 정돈할 수도 없었고 설교를 통해 통일 문제를 성도들의 신앙 영역으로 끌어들일 수도 없었습니다. 교회가 때로는 선구자적 위치에서 통일운동을 이끌어가기도 했지만 정부 정책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신학의 부재가 가져온 슬픈 현실입니다.

왜 평화통일이 필연일까요.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반만년 가까이 한 민족공동체로 이끌어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 민족을 분열시킨 이데올로기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미움과 증오의 산물임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미움과 증오의 이데올로기는 극복되어져야 합니다. 그게 너무나도 자명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분단 유지를 위해선 끊임없이 증오가 생산돼야 하는데, 증오는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부추깁니다. 전쟁은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예방해야 합니다. 전쟁예방보다 근본적이고 위대한 사랑의 행위는 없습니다.

남유다의 다윗이 북이스라엘의 반역을 모두 잊고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고 그들을 포용했듯, 우리도 북한을 포용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된 게 누구 책임이냐고 따지고 물을 것도 없습니다. 더 많이 가진 자가, 더 많은 축복을 누린 자가 먼저 나서야 합니다. 그것이 주님께서 가르치신 정신입니다.

요한일서 3장 16∼18절에서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증오의 바람이 멈추지 않는 지금의 상태에서 도적같이 통일이 도래한다고 해봅시다. 그게 어찌 우리에게 축복이 되겠습니까. 북한정권에 충성하던 군대와 공산당원들을 어찌하려 합니까. 길은 하나입니다. 오직 평화적 방식으로 통일이 이뤄져야 합니다. 이 땅에 평화를 이끌어 올 유일한 에너지는 사랑뿐입니다. 말과 혀로만 하는 사랑이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는 사랑 말입니다. 한국교회가 이 거룩한 사랑의 원천이 되길 하나님은 기다리고 계십니다.

강경민 목사(일산은혜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