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목소리가 나올 줄은 몰랐다. 전신 화상을 입고 지옥 같은 세월을 살았을 소녀였다. 150㎝ 정도의 키에 앙상한 체구. 머리를 뒤로 묶어 이마가 훤히 드러났다. 일그러진 오른쪽 귀, 거친 피부들. 하지만 소녀의 얼굴은 밝았다. 머뭇거리던 소녀는 두툼한 입술을 열고 노래하기 시작했다.
“여호와이레∼하나님은 날 위해 예비하셨네.” 스리랑카 전통언어인 싱할라어 찬양이었다. 청아한 목소리였다.
소녀는 지난해 3월 한국에서 화상치료를 받은 로쉘(14)양이다. 지난 2일 스리랑카 수도 콜롬보 시내 빈민가 싸미푸르 마을에서 만났다. 로쉘의 새 아빠인 니콜라스(45)씨와 엄마 메리(32)씨가 마중을 나왔다. 로쉘과 남동생 로산(10) 로이(7)는 집안에서 부끄러운 듯 고개를 내밀었다. 동행한 기아대책(기대) 해피센터 운영자인 권혁 전영선 기대봉사단은 “아유 보완!”(안녕) 하며 인사했다.
꿈이 뭐냐고 묻자 로쉘은 쑥스러워하면서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했다. 왜 교사가 되려 하느냐고 하자 “선생님이 되면 어려운 이웃과 학생들을 도울 수 있기 때문”이라고 수줍게 말했다. 중학생인 로쉘은 음악을 좋아해 학교 밴드그룹에서 활동한다. 해피센터 방과후학교에서는 피아노도 배우고 있다.
니콜라스씨는 “로쉘은 내게 맏딸이라 더 예쁘고 사랑스럽다. 수술을 잘 해준 한국인들에게 감사하다”며 “딸이 하나님을 전하는 데 쓰임 받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니콜라스씨는 원래 전기기술자였다가 2년 전부터 해피센터 관리인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연신 웃으며 딸 로쉘을 쓰다듬었다.
엄마 메리씨는 흐뭇한 표정으로 그런 남편과 딸을 바라봤다. 메리씨는 원래 무슬림이었으나 지금의 남편을 만나 기독교로 개종하고 이름도 바꿨다.
로쉘은 한 살 때 마약 중독자였던 친아버지의 방화로 전신 화상을 입었다. 목숨은 건졌지만 끔찍한 흉터가 남았다. 성장 자체가 고통이었다. 입은 잘 벌어지지 않았고 손가락은 살이 녹은채 엉겨 붙어 길이가 제각각이었고 뒤틀어져 있었다.
절망 속에 있던 로쉘에게 희망의 빛이 내려온 것은 집 근처에서 어린이 프로그램을 운영하던 해피센터 기대봉사단의 눈에 띄면서다. 로쉘은 기아대책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한국에 와 한양대병원에서 두 차례 재활수술을 받았다. 오그라든 손과 잘 열리지 않는 입 등을 재건했다.
전영선 기대봉사단은 “수술 후 로쉘은 잘 성장해왔다”며 “앞으로도 따뜻한 격려와 희망의 메시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로쉘의 집에 걸린 달력의 글자가 눈에 띄었다. ‘Jesus with us(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
콜롬보(스리랑카)=글·사진 신상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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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3-24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