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가 후들거리고 손이 떨린다. 하얀 선체와 파란 선저(船底)가 물 위로 떠올랐다. 2014년 4월 하릴없이 바다 아래로 가라앉던 그 모습 그대로다. 사나운 물길, 짠 바닷물 속에서도 어쩜 저리 버티고 있었는지. 깨어진 저 창 안에서 아직도 누군가 도와 달라고 외치는 듯하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마음 속 읊조림이 부디 하늘에 가 닿기를.
긁히고 파인 자국 위로 녹물이 붉게 흐른다. 마음 깊이 남은 3년 전 그날의 흉터가 다시 터져 피가 흐르는 듯하다. 세월호의 저 처참한 모습을 똑바로 봐야 한다. 세월호는 우리다. 나다. 우리 아이들이다. 처참한 대한민국, 그 자체다. 세월호가 가라앉던 그날 대한민국도 맹골수도(孟骨水道) 아래로 침몰했다.
지난 1073일, 어떤 일이 있었던가. 왜 구하지 못했느냐는 질타가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을 향했다. 권력은 답을 하는 대신 아예 의문을 제기하는 일, 책임을 따지는 일, 깊이 슬퍼하는 일마저 금기로 만들었다. 가만히 있으라, 그 명령을 국민에게도 내렸다. 대한민국은 거대한 침묵에 잠겼다.
어미와 아비는 그 명령을 외롭게 거부했다. 팽목항에서 청와대 앞까지 쓰러지고 걷고 쓰러지면서 슬픔을 알렸다. 몇몇 끈질긴 언론인도 거부했다. 그날 7시간, 어디에 있었느냐고 거듭 질문을 던졌다. 시민도 가만있지 못했다. 가방에 노란 리본이라도 달았다. 눈물이라도 흘렸다. 거부의 몸짓은 물 밑에서 요동치다 거센 소용돌이가 돼 마침내 터져 흘렀다.
이화여대 비리, 국정문서 유출, 비선실세 등장, 대기업을 향한 강요 협박 또는 뇌물. 이 모든 일이 삽시간에 촛불의 물결을 만들어내고, 대통령 박근혜 탄핵으로 이어진 까닭도 여기에 있다.
마침내 대통령은 쫓겨나갔지만, 대한민국호는 아직 인양되지 않았다. 어떻게 건져내고 녹을 벗기고 수리해 다시 띄울지 궁리하는 게 급하다. 기호 몇 번이 옳으니 아니니 유권자끼리 다투는 모습은 어리석다 못해 한심해 보인다. 물에 빠진 배의 선장으로 누굴 뽑을지 골몰하는 꼴이다.
대한민국에게 제출된 1번 문제는 ‘누굴 대통령으로 뽑을까’가 아니다. ‘어떤 나라를 만들어야 하는가’다. 객관식이 아니다. 모두의 지혜를 모아 백지 위에 써내야 하는 주관식 문제다.
나는 답안지 첫줄에 ‘생명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나라를 만들자’고 쓰겠다. 돈 권력 이념 그 어떤 가치보다 생명을 살리는 일이 가장 중요한 나라에 살고 싶다.
광장의 갈등을 보면서, 생각이 다르면 죽여야 했던 전쟁의 트라우마에서 우리가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가가 나의 삶을 지켜주지 못하고, 사회가 나의 생명을 하찮게 여기니 불안과 공포는 오히려 더 커졌다. 생존의 벼랑에서 각자도생의 길을 찾다보니 작은 기득권을 놓지 못해 헬조선을 만들고 있다.
이달 초 출간된 ‘국가가 할 일은 무엇인가’(메디치)라는 책에서 이헌재 전 부총리는 “작은 기득권에라도 죽기 살기로 매달리지 않으면 나락으로 떨어져 죽는다는 공포가 사회 전반에 퍼져 있다”며 이렇게 얘기했다.
“(6·25전쟁 세대는) 배곯는 게 일상다반사였지만, 포대자루만 있으면 옥수수가루나 밀가루를 배급받을 수 있었기에 굶어죽는 일 자체는 흔치 않았다. … 지금은 누군가 굶어죽을 수 있다는 것을 잊고 지내는 사이에 실제로 굶어죽는 사람이 생겨나고 있다. 생존의 위협이 계속 존재하는데 이를 해결할 사회 시스템은 없다.”
죽어가는 이를 찾아 살리는 일, 대한민국 인양작업은 여기서부터 시작하자.
김지방 사회부 차장 fattykim@kmib.co.kr
[세상만사-김지방] 다시 떠오른 세월호를 보며
입력 2017-03-23 1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