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무원의 서예전이라고 해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중국 진한시대 고법을 따른 예서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문화재청 산하 국립무형유산원의 김정남(57·사진) 기획운영과장이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가나인사아트센터에서 ‘서예전: 발칙한 꿈을 꾸다’를 갖고 있다. 22일 개막일에 둘러본 전시장에선 고수의 기운이 느껴졌다.
알고보니 김 과장은 숭례문 복원사업 때 상량문(새로 짓거나 고친 내력을 적은 글)을 쓴 5명의 서예가 중 1명이다. 그는 한학을 했던 부친 덕분에 어릴 때부터 붓글씨에 친숙했다. 대학에선 사학을 전공했지만, 성하 유석영 선생 문하에서 본격적으로 서예를 배웠다.
그의 작품 세계에 전기가 온 것은 문화재청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였다. 짬짬이 서예공부를 하던 그는 구당 여원구 선생의 회갑전에서 전율을 느꼈다. 구당의 작품은 강하면서 부드러운 묘한 기품이 있었던 것이다.
이후 구당을 스승으로 모시면서 실력이 도약한 그는 대한민국 서예전람회 대상, 한국추사서예대전 종합대상 등을 받았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방한 때는 그가 부채에 쓴 서예 작품이 문화재청의 공식 선물로 제공되기도 했다.
전시장에는 글씨뿐 아니라 그림 같은 이미지도 보인다. 훈민정음 서문을 써서 숭례문을 형상화하고 촛불 모양 안에 윤동주의 시 ‘초 한 대’가 써 있는 식이다. 이탈리아 로마 콜로세움을 로마자로 단테의 신곡을 써서 완성한 작품도 있다.
이런 독특한 시도는 미래의 서예에 대한 나름의 답을 찾은 결과다. 그는 우리 서예계도 한국을 벗어나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서예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마트폰이 대세라 손글씨가 사라지는 시대에 서예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인공지능의 시대에 서예로봇이 출현하지 말라는 법도 없지요. 하지만 예술로봇은 인간이 준 데이터를 분석하는 차원에서 이른바 ‘법고에 의한 외양의 아름다움’만 완벽하게 재현하는 데 그칩니다. 전혀 새로운 걸 창안하는 ‘창신’의 경지는 인간의 몫이지요.”
그는 서예이론가이기도 하다. 성균관대에서 ‘조선조 어필에 관한 연구’로 동양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남들 즐기는 것 다 희생하면서 10년 만에 땄어요. (웃음) 학문을 하지 않고 붓글씨만 써왔다면 서예에 대한 이런 꿈과 비전을 갖기가 쉽지 않았겠지요?”
점점 현실화되는 인공지능 시대, 우리 서예의 세계화를 꿈꾸는 전시 주제가 신선하다. 27일까지(02-720-4354).
글·사진=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한국 서예의 세계화에 대해 고민할 때”
입력 2017-03-23 2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