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으로 배우는 심리학’을 읽는 중이다. 처음 책을 펴고 목차를 살피면서 혹시 했다가 역시 했다. 역시 이삭은 없다. 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들 야곱 사이에 끼인 이삭은 영 존재감이 없다. 그의 삶은 아버지와 아들에 비해 드라마틱할 것이 별로 없다. 그저 아버지에 순종하고, 한 아내만 사랑하고, 이웃과 사이좋게 지내고, 자기를 속인 아들도 축복하는 평화의 인물로, 언급되는 분량도 적다. 재미없는 인물이다. 그런데 나는 이상하게 이삭에게 끌린다.
계기는 ‘바람의 딸 샤바누’라는 청소년 소설이었다. 나이 많은 남자의 네 번째 부인이 될 운명과 싸우는 파키스탄 소녀의 이야기로, 그 가운데 우물에 관한 대목이 나온다. 우물이 유목민에게 얼마나 귀한 생명줄인지 실감 나게 그려지는데 거기서 엉뚱하게 이삭이 떠오른 것이었다. 그런 우물을 몇 차례나 빼앗길 때 이삭이 얼마나 절통했는지에 대해 성경에는 언급이 없다. 그저 다른 곳으로 가서 다시 우물을 팠다고만 되어 있을 뿐이다. 그러고 보니,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 했던 사건에서도 아브라함의 믿음만 칭송될 뿐 이삭의 공포는 별로 주목받지 못하는 것 같다. 장작단 위에 꽁꽁 묶인 채 자기를 향해 치켜 올려진 아버지의 칼을 올려다볼 때 이삭의 심정은 어땠을까. 아내와 작은아들이 공모해 자신을 속인 것을 알았을 때, 큰아들 에서가 방성대곡하다가 동생을 향해 마음에 칼을 품는 것을 알았을 때, 그의 심정은 ‘심히 크게 떨며’로만 집약되어 넘어간다. 순종적이고 섬약하고(야곱이 에서 행세를 할 때 그는 몇 번이나 네가 진짜 에서냐고 확인한다.) 평화적인 그에게 이 일들은 아브라함이나 야곱이 받은 것보다 더 심한 충격과 상처를 주었을 수 있다. 그러나 이삭은 말이 없고, 그러니 그에 대한 기록 표면만 보자면 재미가 없다. 하지만 행간과 뒷면을 읽어내면 독자는 그를 흥미롭고 입체적인 인물로 재창조할 수 있다. 어쩌면 그 이름대로 이삭은 웃음으로 그 모든 시련을 넘겼을지도 모른다. 두리번두리번. 나는 이삭 같은 인물을 찾아내고 싶다.
글=김서정(동화작가·평론가), 삽화=공희정 기자
[살며 사랑하며-김서정] 재미없는 이삭
입력 2017-03-23 1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