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짐 진’ 노숙자, 우리는 ‘노숙 교구’로 간다

입력 2017-03-25 00:00
보따리를 잔뜩 든 여성 노숙인이 지난 주말 꽃샘추위를 피해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순복음교회 다윗성전으로 들어가고 있다.강민석 선임기자

'705일.' 노숙인 이성우(가명·68)씨가 서울의 한 대형교회에서 생활한 기간이다. 이씨는 5년 전 직장과 가족을 잃은 충격에 거리를 떠돌다 교회에 들어왔다고 한다. 몸이 많이 불편한 그는 "은은한 찬송가 소리가 들려오는 교회에 오면 마음이 평안해진다"고 했다. 경기도 수원 함께하는교회에 다니는 박성보(54)씨. 박씨는 지역교회의 도움으로 4년여 노숙인 생활을 청산했다. 수원중앙교회 산하 해피투게더 평생교육원에서 전문학사 학위와 사회복지사 자격을 얻고 어엿한 직장인이 된 것이다. 그는 사회복지학을 공부하며 이웃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그는 "교회가 제 눈을 뜨게 해줬다"며 연신 고마워했다.

교회마다 예배시간에 ‘어느 누구나 주께 나오라’는 찬송을 부른다. 예수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고 설파했다.

하지만 과연 한국교회는 ‘누구나’에게 예배당 출입을 허용하고 있을까. 술집아가씨와 조직폭력배도 들어갈 수 있을까. 술집아가씨가 남들 보기 민망한 차림이 아니라면, 조직폭력배가 행패를 부리지 않는다면, 교회는 언제나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렇지만 노숙인에게만큼은 전혀 현실이 다르다. 불쾌한 냄새와 온전치 못한 정신…. 이런 것들 때문에 교회는 이들에게 쉽게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참 교회가 있었지!”

23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순복음교회 앞에서 만난 50대 여성의 말이다. 잠 잘 곳을 고민하다 문득 교회가 떠올라 ‘그래 여기다’하고 결정했다고 한다. 매일 노숙인 30∼40명이 이 교회를 찾는다.

노숙인들이 왜 이 교회를 찾는 걸까. 여의도순복음교회 예배당과 부속건물은 24시간 열려 있기 때문이다. 또 많은 교인이 예배나 만남 등을 위해 오가는 길에 음식 등 따뜻한 손길이 잇따른다.

조용히 성경을 보고 찬송을 부르는 노숙인도 있지만 자존심 센 노숙인은 말을 붙여도 대꾸조차 하지 않는다. 먹을 것이나 선물을 줘도 받지 않는다. 한 50대 여성 노숙인은 가족들이 찾아와 집에 가자고 해도 가지 않았다. 그리고 이날도 교회 로비를 거닐었다.

교회는 고함을 지르거나 술을 먹고 난동을 부리지 않는 한 노숙인을 내보내지 않는다. 이 교회의 오랜 전통이다. 잠자기 편한 장의자가 있었을 때는 노숙인이 더 많았다고 한다. 교역자들은 이들을 일명 ‘노숙 교구’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교회 박용규 보안대 부장은 “예부터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지만 노숙인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부터 든다”며 “노숙인 관리가 힘들지만 하나님을 찾는 이들을 구제하는 게 교회가 할 일”이라고 했다. “다만 잘해준다는 소문이 나지 않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서울 용산구 삼일교회는 자활 의지가 있는 노숙인에게 주거비를 지원한다. 지난해 부활절 헌금 7340만원도 서울역 노숙인 무료급식시설에 기탁했다. 교회를 찾는 노숙인들이 쉼터에 앉아 있다가 지원과 함께 복음을 듣고 노숙생활을 청산하곤 한다.

서울 중구 남대문교회에 출석하는 노숙인 김국기(가명)씨는 최근 집사에 임명됐다. 노숙생활이 힘들지만 김씨는 허드렛일을 말없이 도맡아하는 교회 섬김이가 됐다.

19년째 노숙인들과 함께 매일 기도회를 갖고 음식을 제공하는 교회도 있다. 노숙인들의 고함소리가 어느새 ‘아멘’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올해로 창립 42주년을 맞는 경기도 부천시 원미2동 복된교회.

매일 낮 기도회에 참석하는 노숙인이 300여명. 이들은 낮 12시가 되면 기도회에 참석하기 위해 부천역과 중앙공원을 찾는다. 교회는 힘들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점심식사를 제공하고 명절이면 양말 내복 수건 등을 챙겨준다. 일자리 알선과 이미용, 무료 진료도 이 교회 성도들이 하는 봉사활동이다.

노숙인 섬김단체 십자가선교회 대표 이재민 목사는 “노숙인은 구제대상이 아니라 선교대상”이라며 “일반교인들이 노숙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없애야 건강한 교회로 발전할 수 있다. 우리 교회에 출석하는 노숙인이 얼마나 되는지 한번 살펴보자. 그리고 이참에 노숙인들을 막는 마음의 벽부터 허물어보자”고 했다.

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사진=강민석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