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주 “내가 좋아서 선택한 연기, 책임져야죠” [인터뷰]

입력 2017-03-24 00:00 수정 2017-03-24 09:56
영화 ‘보통사람’으로 돌아온 베테랑 배우 손현주. 약속된 시간에 늦을세라 인터뷰 전날마다 근처 모텔에 묵곤 한다는 그는 “오늘도 매니저랑 같이 모텔에서 오는 길”이라며 웃었다. 오퍼스픽쳐스 제공
누군가의 아들, 누군가의 남편, 그리고 누군가의 아버지. 배우 손현주(52)가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연기해온 역할들은 매번 그랬다. 소탈하고 친근했다. 작은 행복 하나에 힘을 얻어 그리 특별할 게 없는 매일을 버티듯 살아내는, 그런 보통사람이었다.

23일 개봉한 영화 ‘보통사람’에서도 그 모습이다. 암울했던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에서 손현주는 말 못하는 아내와 다리가 아픈 아들을 둔 성진 역을 맡았다. 퇴근길 큰마음 먹고 산 바나나 2개를 아내와 아들 입에 넣어주고 흐뭇해하는 자상한 가장. 그의 직업은 형사다. 어느 날 연쇄 살인사건에 휘말린 성진이 잘못된 선택을 하면서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맞게 된다.

“시나리오를 봤을 때 가족에 대한 내용이 제 발목을 탁 잡았어요.” 최근 서울 종로구 팔판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손현주는 이 영화를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고 정의했다. ‘보통사람’의 또 다른 한 축은 시대에 대한 탄식이다. 민주주의가 짓밟히고, 안기부 주도하에 비상식적인 일들이 자행됐던 어두운 역사를 스크린 위에 재현했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연상시키는 지점도 있다.

“3년 전 기획 당시 배경은 70년대였어요. 우리나라 첫 연쇄살인마 김대두를 모티브로 했었죠. 하지만 투자에 난항을 겪으면서 논의 끝에 80년대로 바꿨어요. 70년대보다는 조금 덜 경직된 시기였으니까요. 그렇다고 ‘보통사람’이 그 시대를 대변한다고는 말씀드리지 못할 것 같습니다. 단편적인 이야기죠.”

시대적 배경과 설정을 수정했음에도 ‘보통사람’은 정부로부터 모태펀드 투자를 받지 못했다. 손현주는 “우리는 정치 얘기를 하자는 게 아니라 문화와 예술을 만들 뿐”이라며 “영화는 영화로, 문화는 문화로 봐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저는 사실 추적스릴러 장르를 좋아합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처한 사람이 거대한 힘이나 절대 권력에 부딪혀 그걸 깨나가는 스토리가 좋아서요. 현실에선 어려우니 작품을 통해서라도 해소하고 싶었나 봅니다. 그런데 지금 현실에서는 보통사람들이 (권력에) 맞서고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요즘 보통사람의 정의에 대해 자꾸 생각하게 되는데, 결국은 사람이 중심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중앙대 연극영화과 출신인 손현주는 1989년부터 연극 무대에 섰다. 1991년 KBS 14기 공채탤런트로 데뷔해 ‘첫사랑’(KBS2·1996) ‘애정의 조건’(KBS2·2004) ‘솔약국집 아들들’(KBS2·2009) 등 주말극이나 일일극을 통해 ‘믿고 보는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숨바꼭질’(2013) ‘악의 연대기’(2015) ‘더 폰’(2015) 등 영화에서도 인상 깊은 연기를 펼쳤다.

배우로서 부지런한 행보를 이어오면서도 인간 손현주의 삶은 흔들린 적이 없다. 자기관리에 워낙 엄격한 편이기도 하다. 그가 가장 중시하는 건 시간약속. 작품을 시작할 때마다 후배들을 모아놓고 당부하는 한 가지도 그것이다. 손현주는 “나에게 연기해달라고 부탁한 사람 없다. 내가 좋아서, 내가 선택한 것이라면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제 중심은 늘 그대로입니다. 하나 삐끗하면 두 개 잘못되긴 쉽거든요. 연극 처음 배울 때의 마음가짐을 아직도 가지고 있는 게 다행스럽죠. 그 시절이 저를 계속 잡아주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가야할 길이 멀지만요(웃음).”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