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환, 딥젠고 실수 연발에 승부수로 뒤집어

입력 2017-03-22 20:04 수정 2017-03-22 21:16
국내 바둑 랭킹 1위 박정환 9단(오른쪽)이 22일 일본 오사카 일본기원에서 열린 ‘2017 월드 바둑 챔피언십’에서 바둑 인공지능(AI) 딥젠고와 대결하고 있다. KBS 2TV 화면 캡처

한국 바둑 랭킹 1위 박정환 9단이 바둑 인공지능(AI) 딥젠고에 역전승을 거뒀다.

박 9단은 22일 일본 오사카 일본기원 관서총본부에서 열린 월드바둑챔피언십 2라운드 딥젠고와의 대결에서 347수 만에 흑 불계승을 거뒀다.

딥젠고는 지난해 이세돌 9단과 ‘세기의 대결’을 벌인 AI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의 일본판이다. 일본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드왕고와 도쿄대 연구팀이 공동 개발한 딥젠고는 알파고와 같이 빅데이터를 분석하고 인간처럼 학습하는 딥러닝 기술이 적용됐다. 세계 바둑대회에 출전한 AI는 딥젠고가 처음이다. 최근 프로기사와의 인터넷 대국에서도 615승 240패, 승률 71.9%를 기록하는 등 내공이 만만찮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날 대국에선 박 9단이 흑을, 딥젠고가 백을 잡았다. 딥젠고는 대국 초반 좌변에 벌린 흑돌에 백44로 붙여 주변을 깜짝 놀라게 했다.

지난해 알파고와 맞붙은 프로기사 이세돌은 “이 수는 인공지능이 아니면 못 둔다”고 혀를 내둘렀다. 뜻밖의 공격을 당한 박 9단도 5분 이상 생각할 정도였다.

딥젠고는 좌변 전투에서 우세를 잡는 등 박 9단을 압박했고 중반 국면에는 하변 침투까지 성공적으로 마쳐 승기를 잡는 듯했다. 실제 185수가 진행됐을 때 딥젠고는 자신의 승리 가능성을 72%로 나타내기도 했다.

하지만 막판 딥젠고가 실수를 연발했다. 이 틈을 놓치지 않고 박 9단이 승부를 띄워 결국 250수에 역전을 이뤘다. 딥젠고는 승부가 완전히 기울자 자기 집에 의미 없는 돌을 놓는 등 버그에 가까운 수를 놓기도 했다.

앞서 딥젠고는 전날 미위팅 9단에게도 패했다. 박 9단은 대국 후 인터뷰에서 “(초반에는) 딥젠고가 좌변에서 붙인 수가 좋아 일방적으로 밀린 흐름이었다”면서 “바둑 AI한테 많은 수법을 배워 의미 있는 대국이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딥젠고 개발자 가토 히데키씨는 “전날과 같은 내용이 되풀이된 이날 바둑은 유감”이라며 “초중반에 비해 약한 종반은 버그가 아니고 학습 부족인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딥젠고에 승리하면서 대회 2승째를 챙긴 박 9단은 23일 같은 장소에서 중국 랭킹 2위 미위팅 9단과 우승을 놓고 최후의 일전을 치른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