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전 대통령, 답변 하나가 구속 좌우… 7시간20분간 조서 꼼꼼히 따져

입력 2017-03-22 18:31 수정 2017-03-22 21:06
서울중앙지검에 출두한 지 22시간여 만인 22일 오전 7시7분 서울 삼성동 자택으로 돌아온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지자들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고 있다(오른쪽 사진). 전날 아침 자택을 나설 때 긴장을 감추지 못했던 얼굴과 대조된다. 뉴시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생애 가장 길었을 밤을 검찰 청사에서 보냈다. 그가 검찰 조사를 받으며 머문 21시간20분은 역대 전직 대통령 중 최장 시간이다. 자신의 운명을 가늠할 피의자 신문 조서 검토에만 7시간을 넘게 썼다. 22일 오전 6시55분 굳은 표정으로 서울중앙지검 현관문을 나섰지만 기다렸던 대국민 메시지는 없었다. 20여분 전 떠오른 아침햇살만이 박 전 대통령이 떠난 자리를 주홍빛으로 비췄다.

뇌물수수 혐의 등 피의자로 소환된 박 전 대통령 신문은 전날 밤 자정을 앞둔 오후 11시40분 끝났다. 오전 9시35분부터 한웅재 형사8부장검사가 조사를 시작했고 이원석 특수1부장검사가 마무리했다. 혐의를 대부분 전면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만족할 만한 조사였는지는 평가의 문제지만 진행은 원만히 잘됐다. 준비한 질문사항을 모두 조사했다”고 말했다.

신문 종료 후 박 전 대통령은 조서를 검토했다. 형사소송법상 피의자가 조서 표현 등에 이의를 제기할 경우 수정을 거쳐야 한다. 검토에는 일반적으로 2∼3시간 정도 걸린다. 박 전 대통령도 새벽 3시쯤에는 검찰청을 나설 것으로 관측됐다.

박 전 대통령은 변호인이 동석한 가운데 조서를 직접 한 줄 한 줄 꼼꼼하게 읽은 것으로 전해졌다. “내가 말한 것과 표현이 다른 부분이 있다”며 여러 차례 수정을 요구했다고 한다. 검찰은 조서의 일부 표현 위에 선을 긋고 고친 후 박 전 대통령의 확인 도장을 찍는 식으로 의견을 반영했다.

열람 시작 후 약 2시간30분이 지난 오전 2시20분쯤 서울중앙지검 중앙현관문이 열렸다. 경호원이 배치되면서 박 전 대통령이 곧 나올 듯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오전 2시50분쯤 현관문이 다시 닫혔고 검찰 측은 조서 열람이 오전 5시를 넘길 것이라고 취재진에 알렸다. 박 전 대통령은 한 번 열람해 수정했던 조서를 다시 검토하는 작업을 거친 것으로 알려졌다. 아침까지 열람이 계속돼 휴식시간도 가졌다. 검찰 관계자는 “성격이 신중하고 꼼꼼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열람 도중 박 전 대통령 변호인이 “진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검찰에 경의를 표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검찰 관계자는 “무슨 취지인지 잘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열람이 늦어져 이영렬 특별수사본부장 등 간부들도 퇴근을 못하고 밤을 새웠다. 노승권 1차장과의 티타임은 생략됐다. 조서 분량은 문답을 합쳐 수백 페이지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통령은 열람을 마치고 서울중앙지검 현관문을 나섰다. 대기하고 있던 에쿠스 차량에 곧바로 올라탔다. “아직 혐의를 부인하시냐” 등 질문에 아무 대답을 하지 않았다. 밤새 기다렸던 기자들 사이에서 장탄식이 흘러나왔다.

차량은 올림픽대로를 달려 11분 만에 서울 삼성동 자택에 도착했다. 박 전 대통령은 비로소 미소를 보였다. 차량 뒷좌석에서 자택 앞을 메운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지지자 100여명은 태극기를 흔들며 “사랑합니다” “수고하셨어요, 대통령님!”이라고 함성을 질렀다. 최경환·윤상현 자유한국당 의원과 서청원 의원 부인이 자택 앞에서 박 전 대통령을 맞았다. 박 전 대통령은 “왜 오셨냐, 안 오셔도 되는데”라고 고마움을 표현했다고 한다. 서 의원 부인과는 악수를 나눴다. 지지자들에게 2∼3차례 목례를 한 뒤 자택으로 들어갔다. “국민들께 한 말씀 해 달라”는 취재진 질문엔 끝내 답하지 않았다.

글=나성원 임주언 기자 naa@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