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욱이(19)는 골목대장이었어요. 동네에서 축구를 하면 형들보다 두세 걸음 앞서 달려가 사람들을 놀라게 했죠. 서있기보단 지칠 줄 모른 채 뛰어다니던 아이였는데…. 지금은 누워있는 시간이 가장 긴 아이가 됐네요.”
아들의 ㄱ자로 꺾인 손목을 어루만지던 엄마는 행여나 아들이 눈치 챌까 고개를 돌려 눈가를 훔쳤다. 침대에 누운 아들은 천장에 시선을 고정한 채 엄마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었다.
또래에 비해 유독 활발하던 동욱이를 침대에 눕게 만든 건 12년 전 바닷가로 여행 갔을 때 당한 추락사고였다. 삼촌 등 가족들이 낚시를 하는 사이 동욱이는 3층 건물 높이의 방파제에서 갯벌 바닥으로 떨어졌다. 동욱이가 없어진 사실을 알아차린 가족들이 경찰에 신고했지만 1시간 넘게 탐색작전을 펼치고서야 찾을 수 있었다.
어머니 문은희(55)씨는 “구급차에 눕혀진 동욱이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다 눈을 감는데 그게 마지막인 줄 알았다”면서 “하나님께 제발 숨만 붙여달라고 울부짖다가 구급차 안에서 기절하고 말았다”고 말했다.
10시간에 걸친 뇌수술은 잘 끝났지만 동욱이는 의식을 찾지 못했다. 언제 깨어날지 모른다는 설명을 듣고 문씨는 그날로 중환자실에 둥지를 텄다. 사경을 헤매는 아들과 24시간 내내 씨름했다.
동욱이가 의식을 찾은 건 6개월이 지난 후였다. 이름표 옆엔 뇌병변 1급 장애 스티커가 붙었다. 사고로 장기들이 손상돼 신장과 비장 등을 떼 내야 했던 동욱이는 회복이 더뎠고 합병증이 생길 때마다 생사의 갈림길에 서야했다.
“병실에 같이 있던 또래 아이들이 하늘나라로 가는 모습을 많이 봤어요. 창가 쪽 침상에는 호전될 가망이 없는 아이들을 뉘였는데 동욱이도 그쪽에 있었죠. 병원 예배실에서 밤샘 기도하며 신앙의 힘으로 간신히 버텼습니다.”
엄마의 간절한 기도 덕분이었을까. 동욱이는 2년 만에 급격한 회복세를 보였다. 의료진들도 “기적 같은 일”이라며 “재활치료를 해도 될 것 같다”는 소견을 내놨다. 사고 후 처음으로 희망의 빛을 본 엄마는 더욱 바빠졌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1시간 넘게 이동해 재활·인지 치료를 받는 나날이 이어졌다. 최근엔 재활치료 중 동욱이가 몇 걸음 내딛는 모습을 보고 눈물을 왈칵 쏟기도 했다.
하지만 커진 희망만큼 현실의 벽도 높았다. 동욱이가 사고를 당하기 2년 전 남편이 오토바이 사고로 세상을 떠나 문씨는 홀로 1남 2녀의 생계를 떠맡아왔다. 세 차례의 큰 수술과 입원비, 치료비 등 12년 동안 아들 곁에서 병구완을 이어오는 동안 남겨진 건 빚뿐이었다. 낮엔 병원에서 동욱이를 돌보다 저녁때마다 식당일을 하며 보태왔던 생활비마저 두 딸이 시집간 후 동욱이를 돌볼 사람이 없어지면서 끊겼다. 기초생활수급비와 장애수당으로 버티기엔 힘겹기만 한 현실 앞에 좌절할 법도 하지만 엄마는 미안함이 더 크다.
“더 집중적으로 치료를 받으면 한걸음 더 나갈 수 있을 것 같은데 기회를 줄 수 없는 못난 엄마라 미안해요. 동욱이 챙기느라 시집갈 때 아무것도 못해준 두 딸 얼굴도 부쩍 떠오르네요.”
수만 번 아들을 일으켜 세우느라 성할 날 없었을 손목과 허리에 파스를 붙인 채 엄마는 동욱이의 손을 다시 잡았다.
“동욱아 매일 다시 시작하는 거야. 하나님, 저희가 붙든 이 손을 잡아주세요. 그리고 동욱이를 일으켜 주세요.” “아메엔.” 가까스로 입을 뗀 동욱이의 얼굴에 웃음꽃이 폈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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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품은 아이들 ①] 엄마 기도의 힘… 이젠 몇 걸음 내딛어
입력 2017-03-23 0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