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개월 된 딸을 기르는 고모(37·여)씨는 지난해 12월 3만8000원짜리 유아용 미세먼지 마스크를 샀다. 인터넷에서 개당 50원에 파는 일회용 유아 마스크의 760배나 되지만 미세먼지를 확실하게 막아준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고씨는 22일 “비싸도 아이 건강을 지키는 게 길게 보면 더 값진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미세먼지의 공포가 한반도를 집어삼키고 있지만 모두 같은 공기를 마시지는 않는다. 고급 마스크와 공기청정기를 살 여력이 있는 계층은 미세먼지에 꼼꼼히 대비하지만 저소득층, 일용직 노동자들은 속수무책이다.
서울의 초미세먼지 농도는 지난 20일 최고 ㎥당 164㎍까지 치솟았다. 공기의 질은 18일부터 나흘 동안 ‘나쁨(51∼100㎍/㎥)’을 넘어섰다. 세계 대도시 대기오염 실태를 모니터하는 다국적 커뮤니티 에어비주얼은 21일 서울의 공기품질지수(AQI·Air Quality Index)가 세계 주요 도시 가운데 인도 뉴델리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고 발표했다. AQI 수치가 높을수록 대기오염이 심하다는 의미다.
여유가 있는 계층은 좋은 공기를 마시는 데 돈을 쓴다. 5년 전 경기도 용인에 집을 지은 이모(46)씨는 온 집안을 친환경 벽지와 바닥, 원목 가구로 꾸몄다. 천장에는 자동환기 시스템을 달았고, 공기청정기 4대를 들여 방마다 설치했다. 미세먼지를 막는 데 쓴 돈만 500만원이다. 이씨는 “7살 아들이 아토피가 있어 미세먼지에 예민하다. 아들이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집을 짓고 싶었다”며 “미세먼지가 심할 땐 3주 정도 한국을 떠나 뉴질랜드 같은 곳으로 여행을 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공기청정기 구매가 유행이 됐다. 2013년 3000억원이던 시장 규모는 매년 50% 이상 성장, 올해 1조5000억원을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10만원을 호가하는 고가 마스크도 인기다. 프리랜서 권모(26)씨는 올 초 인터넷 쇼핑몰에서 11만원짜리 마스크를 샀다. 미세먼지를 막아주는 필터가 있고 디자인도 세련됐다. 권씨는 “어쭙잖은 마스크에 푼돈 쓰기보다 돈을 더 줘도 건강을 지켜주는 제품을 쓰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저소득층은 미세먼지 직격탄을 피할 수 없다. 미세먼지가 더 많은 곳에서 살고 일하지만 기껏해야 일회용 마스크 한 개로 버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지하에 살거나 밖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대표적인 미세먼지 취약층이다. 환경보건시민센터 관계자는 “미세먼지에는 무거운 금속화합물 등이 들어 있어 가라앉는 성격이 있다”며 “지상보다 반지하에 사는 사람이 미세먼지를 훨씬 많이 마시게 된다”고 했다.
웬만한 공사장은 미세먼지 주의보와 상관없이 공사를 진행한다. 서울 은평구 재개발 현장에서 일하는 곽모(53)씨는 “원래도 공사장에서 날리는 먼지를 많이 마시는데 요새는 죽을 맛”이라고 했다.
미세먼지 앞에선 소득 격차가 건강 격차로 직결된다. 김동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같은 미세먼지에 노출돼도 공기청정기 등 환기장치와 먹는 음식, 치료와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다르다”며 “국가가 나서서 미세먼지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집단을 더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소득에 따라 유병률이나 수명에 차이가 나는 건강 격차가 벌어지면 중저소득층이 고소득층을 보며 느끼는 박탈감도 심해진다”고 우려했다.
글=오주환 기자 johnny@kmib.co.kr, 삽화=전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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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3-23 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