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자신에게 닥친 여러 안 좋은 일들로 인해 두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가만히 있어도 알지 못하는 두려움이 밀려오는 것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이런 두려움은 어디로부터 나오는 것일까요. 혈과 육을 지닌 인간의 마지막은 죽음입니다. 마귀는 이것을 이용합니다. 사람에게 가장 치명적인,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이용해 평생 마귀에 매여 종노릇하게 합니다(15절).
사람들은 이 두려움을 몰아내기 위해 방법을 찾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귀신을 불러 두려움을 쫓아내려 합니다. 그러나 귀신으로 죽음의 세력을 잡은 마귀를 대적할 수는 없습니다. 영적인 어둠의 세계에서 마귀는 왕이기 때문입니다(마 12:24∼26). 약물에 의존하거나 심신을 단련해 죽음의 두려움을 이기려고 합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두려움을 극복할 수는 없습니다.
성경은 이에 대해 오직 한 가지 방법을 전합니다. 죽음의 세력을 잡은 마귀를 멸하시려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명쾌하게 전합니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요일 3:8)
사람은 혈과 육을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나 삽니다. 그래서 매우 연약합니다. 예수님도 이러한 인간의 연약함을 그대로 갖고 세상에 오셨습니다(히 2:14,17,18). 예수님도 이 땅에 혈과 육을 가진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이상 죽음의 길을 가셔야 합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가시는 게 아닙니다. 죽으셨으나 다시 살아나셔서 마귀를 멸하셨습니다. 죽음이 인간의 모든 생애를 마치는 것이 아님을 친히 보여 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도 죽음 후에 오는 부활에 참여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이젠 더 이상 두려움에 사로잡혀 살지 않아도 되고 마귀에 종노릇할 필요도 없어졌습니다(고전 15:50∼54).
그러니 확고한 부활신앙을 고백하십시오. 죽음은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통과하는 문일 뿐입니다. 이에 대해 우리들은 이미 경험한 사실이 있습니다. 바로 태중의 삶입니다. 태중에선 사는 방식이 세상과 전혀 다릅니다. 숨을 쉬지 않아도 되고 먹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태중을 벗어나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삶의 방식이 이 땅에 맞게 바뀝니다. 숨을 쉬어야 살 수 있고 먹어야 살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의 삶의 방식에 알맞은 몸으로는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천국에서 살기에 알맞은 몸으로 변화되지 않으면 갈 수도, 살 수도 없습니다. 세상의 삶에서 변화하기 위해 통과하는 문이 바로 죽음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부활을 믿는 성도들은 더 이상 죽음이 우리들을 마귀의 종노릇하게 하는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죽음은 우리를 더 이상 가둬두지 못합니다. 천국에 가서 살기에 알맞은 몸으로 변화하기 위해 지나가는 문일 뿐입니다. 예수께서 친히 부활하시므로 죽음의 세력을 잡은 마귀를 멸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이 땅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할렐루야.
이현 목사(청주 선교중앙교회)
[오늘의 설교] 죽음의 권세 깨뜨리신 예수님
입력 2017-03-24 0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