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주 싸움의 복판에 선다. 대개 이럴 땐 옳다고 여기는 한 쪽에 서게 마련이다. 싸움이 지리멸렬하게 느껴질 때에 이르러서야 묻는다. 어떻게 하면 이 갈등이 종식될까. 지금도 한창인 한국사회의 이념갈등, 한국교회 내 여러 다툼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재훈(48) 온누리교회 목사는 이런 우리에게 필요한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글항아리·표지)을 길 위의 책으로 추천했다.
“제가 영향을 받은 책들은 많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이 시대를 위해 추천하고 싶은 책은 미국의 사회운동가이자 교육자인 파커 J 파머의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입니다.” 목회자가 신앙서도 신학서도 아닌 사회과학서를 추천한 것이 예상 밖이었다. 이 책의 원제는 ‘민주주의의 마음 치료’(Healing the heart of demo cracy)다.
“파머는 기독교 영성을 바탕으로 교육과 사회 전반의 문제를 통합시킨 것으로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 미국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친 그의 책이 한국 사회와 크리스천에게 주는 메시지도 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목사는 이 책뿐만 아니라 파머의 새 책을 거의 다 읽고 있다고 한다.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은 상처받은 이들의 마음에 공감하는 노력이 민주주의의 핵심이라는 것을 미국의 다양한 역사적 사례와 문헌을 통해 논증한다. “이 책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서로의 다름과 의견의 차이는 필수적이고 그런 긴장을 수용하고 소통하는 것이 민주주의에서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긴장을 창조적으로 끌어안는 ‘마음의 습관’을 기르는 것이 민주주의 교육이라고 합니다.”
파머는 정치를 게임이 아니라 공동체를 창조하기 위한 인간의 고귀한 노력이라고 본다. 사회적 분노는 비통한 이들이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이다. 이들의 비통함을 끌어안을 때 민주주의는 진전한다. 60년대 미국의 흑인민권운동은 거리에서 물결쳤다. 파머는 낯선 이들이 오가는 거리가 공적인 삶을 위한 중요 공간이라고 한다(182쪽). 지난해 말 한국의 광장을 채웠던 ‘촛불’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파머의 이론을 우리 사회에도 적용할 수 있을까. “한국정치가 미국정치보다 훨씬 어렵고 복잡한 것 같습니다. 역사적 상처와 분단의 현실, 지역감정 등 미해결 과제가 산적합니다. 하지만 한국 정치와 교회 지도자들이 이 책을 읽고 적용한다면 많은 갈등이 해소될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마음의 역동이 정치라면 이 마음을 나누는 것은 언제 어디에서나 유효하다는 얘기다.
이 목사는 파머의 제안을 목회에 적용했다고 한다. “저는 교회 안에 다양한 목소리나 서로 간의 반목, 갈등을 어떻게 창조적으로 포용할지를 이 책에서 배웠습니다. 진정한 공동체는 반대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그 반대도 파괴적 갈등이 아닌 창조적인 능력으로 변화될 수 있어야 합니다.”
대형 교회들이 이런 저런 이유로 소란스럽지만 이 목사가 시무하는 교회는 평화로워 보인다. 갈등이 없진 않을 것이다. 다툼이 있을 때 모두 한쪽에 서서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파머의 말대로 다른 편이 내는 마음의 소리에 서로 귀 기울여 문제를 풀고 있을 것이다. 조용한 교회의 비밀은 이런 ‘마음의 정치’에 있는 건 아닐까.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길 위의 책-‘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 상대편이 내는 마음의 소리에 서로 귀 기울여라
입력 2017-03-23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