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직행 5만원권 사상 최다… 소비 절벽에 돌지 않는 돈

입력 2017-03-22 05:02

소비 부진에 5만원권 월별 환수액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돈이 얼마나 돌고 있는지 보여주는 통화승수도 20년 만에 최저 수준이다. 경기 전망이 악화하면서 소비가 줄어들고, 내수 부진이 결국 1분기 성장률마저 잠식시킬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21일 한국은행 경제통계 시스템을 보면 2월 5만원권 환수액은 2조4004억원으로 2009년 5만원권이 처음 발행된 이래 가장 많았다. 1월 환수액 6394억원보다 4배 가까이 증가했다. 설 명절 전후로 화폐 발행 자체가 늘어 환수액도 늘어난 것인데, 평소 같으면 여러 단계를 거쳐 은행으로 돌아와야 할 5만원권이 소비 부진으로 곧바로 환수됐다는 해석이다. 지난해까지 5만원권 환수가 지지부진해 지하경제가 계속 커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왔지만 국면이 바뀌었다. 2월 1만원권 환수액도 1조9465억원 규모로 2015년 10월 이후 최대치였다.

실물에 대한 소비·투자 부진은 정체된 돈 흐름에 반영된다. 통화승수는 현금에 더해 2년 미만 정기 예·적금을 포함한 광의통화(M2)를 한은이 찍어낸 본원통화로 나눈 수치다. 1월 현재 통화승수는 16.4배로 1996년 4월 이후 20년 9개월 만에 최저치다. 예금은행의 요구불예금 회전율도 19.4배로 11년 만에 가장 낮았던 지난해 10월과 같은 수준이다. 돈은 많이 찍는데, 이 돈이 돌면서 또 다른 신용을 창출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경기 부진이 가장 큰 원인이다.

실제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최순실 국정농단이 불거진 지난해 11월 기준점 100 이하로 추락한 뒤 4개월 넘게 100을 넘기지 못하고 있다. CCSI는 2003∼2016년 중 장기 평균치를 기준값 100으로 해서 이보다 크면 소비자들이 경기를 낙관적으로, 100보다 작으면 비관적으로 본다는 의미다.

지난달 기준금리를 동결한 한은의 금융통화위원회에서도 민간소비 부진을 우려하는 금통위원들의 목소리가 대거 분출됐다. 최근 공개된 당시 금통위 의사록을 보면 한 위원은 “민간소비는 소비심리 회복 지연으로 당초 전망 수준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위원도 “민간소비 부진이 지속되며 서비스업 등 내수 성장세가 약화되는 모습”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위원 역시 “일상 소비와 관련 깊은 숙박·음식점, 예술·스포츠·여가, 운수 부문 생산이 감소세로 전환됐다”며 “다수 국민이 체감하는 경기 악화 사실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제는 통화정책으로 소비 부진을 만회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국내 경기가 이미 후퇴한 상황에서 미국이 금리를 올리고 있기에 한은이 움직일 여력이 없다. 적극적 재정이 남은 해법으로 꼽히는데, 50일도 남지 않은 탄핵 정부에 기대하기 어렵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세수 확보에 초점을 두었던 박근혜정부의 긴축적 재정운영과 반대로, 새 정부는 집권하자마자 상황 반전을 위해 보다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실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 그래픽=박동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