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중산층의 신분상승 욕구 서린 ‘철화청자’ 매력 속으로

입력 2017-03-22 20:33
철화청자 화문 매병(위). 철화청자 연화문 과형병. 호림박물관 제공

고려청자하면 비색청자나 상감청자를 떠올리게 된다. 이들 청자는 요즘 한 점당 수억 원에서 수십억 원에 거래되는 고가의 컬렉션이지만 고려시대에도 왕족이나 귀족이 사용했던 사치품이었다.

은은하게 음각한 당초무늬 비색청자 다완으로 차를 마시고, 상감청자 매병에 꽃을 꽂았던 왕족이나 귀족들. 호화롭기 그지없는 그들의 삶을 따라하고 싶어 했던 중산층은 뭘 사용했을까. 바로 철화청자(鐵畵靑磁)다.

흙이 철을 머금어 질 낮은 갈색 톤을 띠는 도자기에 검붉은 색이 나는 철사안료를 붓에 묻혀 꽃 모양, 풀 모양 등 소탈한 무늬를 빠르게 쓱쓱 그려 넣었다. 음각하거나 상감한 고려자기에서는 맛볼 수 없는, 호방한 붓질의 미학에서 뿜어져 나오는 활달한 에너지가 좋다. 그래서 전시 제목이 ‘철, 검은 꽃으로 피어나다’일까. 고미술 컬렉션으로 유명한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 호림박물관이 마련한 철화청자 특별전에서 청자의 새로운 세계에 눈떠보기를 권한다. 철화청자 200여점이 한 자리에서 대거 대중에게 공개되기는 처음이다.

이장훈 학예사는 “철화청자는 10세기 후반부터 제작되기 시작해 전성기 때 출현한 비색청자나 상감청자의 시대인 12∼13세기까지도 수요층을 달리하며 계속 이어졌다”고 말했다. 지방 각지의 도요지에서 발굴되고 있는 것으로 미뤄 왕실과 귀족이 아닌 지방에서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이 된다.

이 학예사는 “정교함은 떨어지지만 대범한 필치에서 오히려 시원한 풍류를 느낄 수 있다”며 “어쩌면 한국미를 논할 때 항상 거론되는 소탈미의 원형으로 철화청자를 꼽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간송미술관이 보유한 명품 청자 중 청자상감운학문매병이 있다. 그런데 이번에 전시된 작품 가운데 그것과 형태와 무늬가 똑같은데, 학 무늬를 검붉은 철사안료로 멋스럽게 그려 넣은 것도 나왔다.

제1전시실에는 이런 명품 철화청자만을 엄선해서 보여준다. 기형 역시 주전자, 매병, 항아리, 정병, 대반(세수대야), 화분, 장고 등 비색이나 상감청자의 기형과 같은 것이 많아 흥미롭다.

제2전시실에는 중산층이 사용했을 법한 다소 질이 떨어지는 철화청자들을 볼 수 있다. 은은하고 기품 있는 푸른 청자색과는 다른 갈색 톤의 바탕, 거기에 그려진 무늬의 정교함은 떨어진다. 그러나 이런 청자야말로 상류층의 삶을 따라하고 싶어 했던 중산층의 욕망을 민낯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3전시실에서는 기종과 무늬가 비슷한 화청자와 비색·상감청자를 나란히 놓고 비교 감상하도록 했다. 9월 30일까지(02-541-3523).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