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이딴 정치 해놓고… 정치권, 툭하면 “명예훼손”

입력 2017-03-22 05:02

지난해 말부터 이어진 탄핵 정국에 정치인과 시민단체가 서로를 모욕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고발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불통 사회의 극단적 단면”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지난 2일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은 서울 영등포경찰서에 고소장을 접수했다. 사회활동가 박모씨가 자신의 사진에 ‘개 입마개’를 씌운 그림을 공개해 자신을 모욕했다는 내용이었다. 나흘 뒤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 부인도 국회의사당 앞에 자신과 남편을 합성한 누드사진 현수막을 내건 이를 찾아 처벌해 달라고 영등포경찰서에 요청했다. 경찰은 보수단체인 태블릿PC국민감시단 회원 중에 표 의원 부부 누드그림 현수막 게시자가 있다고 판단하고 수사 중이다.

온라인상에서 벌어진 명예훼손과 모욕 공방도 사법 처리를 기다리고 있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SNS에서 자신을 사칭해 촛불집회 비판 글을 올린 네티즌 10여명을 지난해 12월 경찰에 고소했다. 더불어민주당 손혜원 의원은 지난달 21일 자신과 고영태 더블루케이 전 이사를 두고 성적 모욕감을 주는 댓글을 단 악플러 59명을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국민의당 박지원 대표도 지난해 말부터 자신을 비난하는 내용의 트위터를 작성한 정청래 전 의원을 지난 1월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보수·진보 성향의 시민단체도 ‘고발 대열’에 합세했다. 보수 성향 시민단체 활빈단은 지난 1월 국회 의원회관에 박근혜 전 대통령을 희화화한 누드 그림 ‘더러운 잠’ 전시를 허용했다는 이유로 표 의원을 경찰에 고발했다. 보수단체 북한인권법통과를위한모임(북통모)의 인지연 대표는 시민 1863명과 함께 서울 남부지검에 표 의원과 ‘더러운 잠’ 원작자 이구영 작가를 명예훼손, 음화반포 혐의 등으로 고발했다. 청년 정치단체인 청년당 추진위와 시민 1만3963명은 지난 6일 박영수 특별검사 자택 앞에서 ‘야구방망이 집회’를 연 장기정 자유연합 대표를 모욕,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고, 장 대표도 추진위를 이끄는 김수근 청년결사대 총대장을 내란 예비, 선전·선동 등 혐의로 검찰에 맞고발했다.

공적인 위치에서 권력을 견제하고 비판하는 이들이 자신과 주변이 관련된 비난은 참지 못하고 법적인 분쟁까지 일으키는 행태는 시민을 피곤하게 만들고 있다. 구직자 정모(24)씨는 “보수냐 진보냐를 따지면서 서로 깔아뭉개고, 보여주기 식으로 고소·고발을 하는 행태에 눈살이 찌푸려진다”고 말했다. 직장인 박모(32)씨도 “자기와 생각이 다르면 명예훼손, 모욕을 갖다 붙이는 식인 것 같다”고 지적했다.

고소·고발을 남발하는 현상은 불통 사회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모욕죄 고소·고발 남발은 정치적 언어를 법으로 통제하고 차단하겠다는 행위”라며 “이명박정부 때 시작된 현상이 불통정부로 불릴 만큼 정치적 소통을 거부한 박근혜정부 들어서 일반화됐다”고 분석했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시민단체까지 고소·고발전에 합세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약화된 사회에서 시민이 법이라는 권위에 기대고자 하는 성향을 보이기 때문”이라며 “개인의 감정적 문제까지도 소통이나 논쟁으로 해결하는 게 아니라 법에 호소할 만큼 소통이 안 되는 사회라는 증거”라고 꼬집었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정치적 목적으로 상대편을 곤경에 빠뜨리고, 본인을 드러내기 위해 명예훼손, 모욕을 언급하는 양상은 현대사회의 특징이며 이번 탄핵정국과 겹쳐 폭증한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정치적 갈등을 법적으로 해결하려는 정쟁의 사법화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글=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