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은 21일 검찰에 출석하면서 “국민께 송구하다”며 일단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검찰 조사 과정에서는 “모른다” “범죄 의도가 없었다” 등의 주장으로 뇌물수수 및 직권남용 등 혐의 대부분을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의 추궁을 회피하거나 진술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고 반론권을 적극 행사한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통령은 조사에 앞서 서울중앙지검 10층 조사실 옆 휴게실에서 검찰 특별수사본부의 노승권 1차장검사(검사장급)와 10분 정도 티타임을 가졌다. 노 차장은 박 전 대통령에게 수사 협조를 요청했고, 박 전 대통령은 “성실히 잘 조사받겠다”고 답했다. 이어 조사실로 이동한 박 전 대통령은 오전 9시35분부터 한웅재 부장검사와 명운을 건 진실 공방을 시작했다. 밤늦게까지 이어진 조사 과정에서 호칭은 ‘대통령님’ 혹은 ‘대통령께서’였지만 조서에는 ‘피의자’로 기록됐다.
조사 초반 검찰은 미르·K스포츠재단 강제 모금 의혹에 집중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203억원을 출연했다가 뇌물공여 혐의로 구속 기소된 점을 언급하며 박 전 대통령이 재단 출연금을 두고 대가성 거래를 한 것 아니냐고 따져 묻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은 재단 설립이 정책적 관점에서 추진된 정당한 직무 수행이라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개인적으로 이득을 취한 부분도 없다”는 기존 해명을 되풀이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가 경제공동체 관계임을 밝히는 데도 주력했다고 한다. 최씨와 박 전 대통령이 공모했거나 최씨가 박 전 대통령을 통해 관철시킨 각종 ‘인사청탁’ ‘대기업 광고 몰아주기’ ‘납품 강요’ 등의 범죄행위가 사실상 두 사람의 공동 이익을 위한 것이었음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다.
반면 박 전 대통령은 최씨의 국정농단을 ‘개인 비리’로 규정한 뒤 철저히 선을 긋는 전략을 내세운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통령은 측근관리 실패를 인정하면서도 최씨의 비리 행위는 잘 몰랐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대통령이 최씨와 최씨 지인 기업에 특혜를 주도록 대기업을 압박했다는 의혹 부분은 “최순실과 관련이 있는 줄은 몰랐다”거나 “중소기업이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하니 도와주라고 했다”는 취지의 답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대통령은 과거 최씨에게 일부 연설문 등이 유출된 사실은 인정했다. 다만 검찰에서는 “홍보적 관점에서 연설 표현에 대해 도움을 구했던 것”이라는 기존 입장을 반복했을 가능성이 높다. 연설문 이외의 문건들에 대해서는 “비밀에 해당하는지 불분명하다”는 논리를 내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박영수 특별검사팀 수사를 통해 실체가 드러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 및 실행 의혹은 “모르는 일”이라고 밝힌 기존 언론 인터뷰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은 답변을 내놨다고 한다. 일부 문체부 인사들에 대한 사직 강요 부분은 “대통령의 정당한 인사권 행사”라는 논리로 맞섰다고 검찰 관계자는 전했다.
검찰은 이날 박 전 대통령이 받는 주요 혐의의 핵심 공범인 최씨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 등에게 출석을 요구했다. 이들은 불출석사유서를 제출하고 출석하지 않았다.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박 전 대통령과의 대질신문도 염두에 두고 이들에게 출석을 요구했고, 최씨 등도 이런 사정을 고려해 불출석한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노용택 기자 nyt@kmib.co.kr
“모른다” “범죄 의도 없었다”… 朴, 적극 반론권 행사
입력 2017-03-21 17:56 수정 2017-03-21 2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