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전 대통령 삼성동 자택∼검찰청 5.47㎞… ‘길었던 9분’

입력 2017-03-21 17:54 수정 2017-03-22 00:39

박근혜 전 대통령이 검찰 조사를 받으러 가는 날 서울 삼성동 집을 가장 먼저 찾은 이는 올림머리와 화장을 담당하는 정송주·매주 원장 자매였다. 정씨 자매는 평소보다 약 20분 이른 오전 7시11분 택시를 타고 도착했다. 이들은 박 전 대통령이 거처를 청와대에서 삼성동으로 옮긴 다음 날인 지난 13일부터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방문했고, 이날 아침도 마찬가지였다.

같은 시각 박 전 대통령 지지자 30여명은 골목에서 ‘대통령님 끝까지 함께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라고 쓰인 플래카드를 들고 박 전 대통령이 집 밖에 나오길 기다렸다. 오전 8시30분쯤 초등생 자녀 2명을 등교시키던 한 학부모는 집회현장을 지나며 “불편하다. 박근혜 빨리 좀 이사 갔으면 좋겠다”고 불평했다.

박 전 대통령이 자택 정문에서 모습을 드러낸 시각은 오전 9시15분. 100여명까지 불어난 지지자들은 “고영태를 수사하라”고 외치다 박 전 대통령이 등장하자 “대통령 박근혜”라고 연호했다. 흐느끼는 소리도 들렸다. 박 전 대통령은 기자들이 “한말씀 해 달라”며 소리치자 방송 카메라 쪽을 잠시 쳐다본 뒤 살짝 미소를 띠고 아무 말 없이 곧바로 검은색 에쿠스 차량에 올라탔다. 차량이 출발하자 골목 양옆에 줄지어 있던 지지자들은 차량을 향해 손과 태극기를 흔들었다. “대통령님, 우리 대통령님”이라고 외치며 울부짖는 사람도 있었다. 차량이 천천히 골목을 빠져나가자 울음소리는 더 커졌다.

에쿠스 차량은 오전 9시19분쯤 테헤란로로 접어들었다. 차량 옆과 뒤로 경찰 오토바이 10여대가 경호했다. 선릉역에서 서초역 방향으로 가는 테헤란로는 교통이 통제돼 뻥 뚫려 있었다. 한 시민은 박 전 대통령이 탄 차량을 향해 ‘주먹 감자’를 날리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 차량은 오전 9시24분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도착했다. 삼성동 자택에서 중앙지검까지 ‘상념의 5.47㎞’ 길은 9분이 소요됐다.

이때 중앙지검 앞에서는 “박근혜 구속하라”는 구호와 “탄핵 무효”라는 구호가 같이 들렸다.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은 이날 오전 8시30분부터 중앙지검 약 200m 앞에서 집회를 시작했다. 퇴진행동의 한 관계자는 오전 9시10분쯤 연단에서 “곧 있으면 박근혜씨가 집에서 출발한다”며 “최대한 길 앞쪽으로 가서 국민 목소리를 제대로 들려주자”고 했다. 100여명의 집회 참가자들은 “박근혜를 구속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다가 오전 9시34분쯤 해산했다.

박 전 대통령 지지자 150여명은 중앙지검 서문 쪽에 모였다. 그들은 9시20분쯤부터 “탄핵 무효”라고 외치기 시작했다. 박 전 대통령이 탄 차량이 지나가자 바로 옆 사람과도 소통이 불가능할 정도로 구호 소리가 급격히 커지기도 했다. 이들은 박 전 대통령이 중앙지검으로 들어간 뒤에도 해산하지 않고 태극기를 흔들며 구호와 자유발언을 이어갔다. 한 자유발언자는 “박 대통령이 한 달 안에 청와대로 복귀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후 6시쯤엔 지지자들이 더 몰려들어 300여명으로 불어났다.

한편 지난 16일 오후 청와대 경호실 소속 경호원이 박 전 대통령 자택 인근 건물에서 실탄이 장전된 권총을 잃어버렸던 것으로 드러났다. 건물 주차관리인이 당일 화장실 변기 위에서 권총을 발견해 경찰에 넘겼고 경찰은 경호실에 권총을 돌려줬다.

윤성민 임주언 기자 woody@kmib.co.kr